5. 결론

아프리카인들의 시간개념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직선적인 시간적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서구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낯선 개념이다.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생산성과 떼어놓을 수 없다. 24시간의 시간은 생산적으로 활용되어야 하며 쪼개고 또 쪼개서 효율적으로 이용되어야 하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용된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인은 시간의 노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인의 시간은 언제나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들 수 있는 개념으로 시간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을 따지며 지내야만 하는데 그 이유는 시, 분, 그리고 초까지도 나누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는 일과 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사람과 어울려 지내면서 그날의 시간을 흘려보낸 것은 ‘아무것도 못한’ 범주에 속한다.

아프리카인들의 시간개념은 자연현상을 중시하고 사람을 모든 활동의 근본으로 생각하는 철학적 종교적 의식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연을 거스르고 거부하며 바꿀 수 있다는 생각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패턴에 따른다면 ‘우리의 시간개념과 아프리카인의 시간개념 중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이고 생산적이냐’라는 질문에는 주저 없이 전자라고 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느 것이 더 사람답게 사는 것이냐’라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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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프리카인들은 사건과 자연현상을 통하여 시간을 계산

이러한 음비티의 주장은 에반스-프리차드(Evans-Pritchard)나 보해넌(Paul Bohannan)의 연구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에반스-프리차드는 뉘르(Neur)족의 시간개념을 연구한 후 뉘르족은 시간을 세대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고 설명하였다. 1년이 12개월의 단위로 나뉘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뉘르족은 그것들을 한 단위의 단편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도 어느 달에 한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추상적인 숫자 기호에서 일어난 사건들 간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그들은 완전한 시간의 단위보다 활동들이나 활동의 성과, 그리고 사회 구조와 구조적 차이들로서 훨씬 쉽게 받아들인다.  

보해넌이 티브(Tiv)족으로부터 시간이란 제각기 다른 활동을 수용하는 일련의 폐쇄된 방으로 이러한 시간의 방들은 옮길 수도 섞일 수도 없다고 밝힌 내용도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티브족에게 시간은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현상들에 의해 다른 종류의 기간들로 분류되어진다. 하지만 그 사건들은 종종 다른 논리적인 시리즈에 속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시간의 분류를 서로 관련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티브족은 달을 시장이나 농업 활동, 혹은 계절과 연관시키지 않는다. 만약 누가 얼마나 많은 달이 1년에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10에서 18까지 매우 다양하다. 만약 누가 한 달에 있는 시장의 개수를 물으면, 그 대답은 3에서 8까지 다양하다. 또한 한 달에 있는 일의 수를 물으면, 10에서 15까지 다양하다.

아프리카의 시간 계산은 반복되는 자연현상을 전제로 한다.- 계절, 달의 차고 기움, 그리고 해의 움직임- 그리고 이러한 현상과 관련된 사회 활동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또한 개인과 사회의 전반적인 삶 속에서의 사건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준으로 삼는다. 이러한 사실들은 아프리카인들이 시간을 양적인 것보다는 질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경험들에 근거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즉 아프리카인 들은 다른 사건들에 비해 구체적인 사건들을 중요시한다. 예를 들어, 한 아프리카인이 ‘그 마을은 내 막내아들이 태어났을 때도 옮기지 않았어요.’ 혹은, ‘정부는 내가 정화의식을 한 후에, 그리고 결혼을 하기 전에 출범했다.’라고 표현한다.

‘하루’는 아프리카의 공동체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맞추어 시간이 진행된다. 예를 들어 우간다의 앙코레(Ankore)족은 가축을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가축을 돌보는 일에 맞추어 시간이 나누어진다. ‘달’은 ‘뜨거운 달’, ‘첫 비가 오는 달’, ‘잡초를 뽑는 달’, ‘콩을 거두어들이는 달’, ‘사냥을 하는 달’등으로 나누어 계산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이 시간적으로 정확하게 구분되기 보다는 얼마나 지속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해’는 계절에 따른 활동들에 맞추어서 이루어진다. 모두 ‘몇일이 한해인가’라고 세기 보다는 ‘건기와 우기가 몇 번이나 지나갔는가’로 계산된다. 이 또한 정확한 날짜로 계산되면 365일을 벗어나 340일이 될 수도 있으며 360일이 될 수도 있지만 계절이나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차이도 느낄 수 없다.

낮과 밤의 끊임없는 리듬처럼, 그리고 달의 차고 기울음처럼 한해가 왔다가는 가곤 하는 그런 세월을 사람들은 기대하면서 살아간다. 즉 그들은 우기가 오면 다음에는 파종의 계절이 오고, 그것이 지나면 수확의 계절이 오며, 그 다음에는 건기가 오고, 그것이 지나면 다음에 다시 우기가, 그리고 그 우기의 다음에는 또 다시 파종의 계절에 오는 이 같은 영원히 지속되는 일들을 기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해를 지내면서 과거라고 하는 시간의 차원이 차츰 더해져 간다. 그들에게 있어 ‘무한’이라든가 ‘영원’이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다만 과거의 영역에 속해있는 어떤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시간은 양을 잴 수 없는 다른 사건들의 반복들과 세대나 연령층과 같은 사회 구조들로서 표현되기 때문에, 시간은 균일한 것, 지속적인 것, 혹은 동일한 것으로 이해되어 지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관점에서는, 지금의 하루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똑같은 하루라고 생각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 시간은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한다. 따라서 양력과 그것을 다시 일정한 달, 일, 시, 분, 초로 나눈 것에 근거한 현대 서양 문명의 연대기와는 다르게 자세한 과정들의 세부사항부터, 현재 시간까지의 일시적인 과정의 측정을 동일하게, 지속적으로, 그리고 균일하게 추상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아프리카인들은 시간을 수학적인 계산으로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사건들과의 관련속에서 구체적이고 특정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헤아린다. 즉 시간은 사건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날, 달, 해, 일생, 혹은 사람의 삶은 제각기 그것들이 지닌 특별한 사건에 의해서 모두 나뉘어지고 헤아려진다. 왜나하면 그러한 시간들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일 어떤 일을 하자’라는 약속은 정확히 몇 시에 하자는 의미보다는 ‘무엇을 한다.’라는 의미가 강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무엇을 한다.’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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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프리카의 시간개념은 현재와 과거를 중시

아프리카인들에게 시간은 이차원적인 현상이다. 즉 긴 ‘과거’와 ‘현재’만이 있을 뿐 실제적으로 미래가 없다. ‘실제적인 시간’이란 현재의 시간이며 과거의 시간이다. 일단 일어난 사건은 이제는 미래를 향하지 않고 현재와 과거 속으로 전개해 나간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뒤로 움직이는 것이다. 반면에 ‘잠재적인 시간’이란 미래에 틀림없이 일어날 사건, 또는 자연현상의 불가피한 리듬 안에 있는 것을 가리키고 일어나지 않은 것, 혹은 곧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건은 비시간(No-time)의 범주 안에 속한다.

미래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미래 속에 있는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이며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을 구성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도 그들의 마음을 미래의 사물에다 두고 있지 않고 이미 일어난 것에 두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시간의 일부를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삶 속에서 경험해야 하고 미래에 있는 것은 전혀 경험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음비티(J.S. Mbiti)의 주장처럼 아프리카인들은 대시간(Macro-Time)인 자마니(zamani ; 과거)와 소시간(Micro-Time)인 사사(sasa ; 현재)로 구분되고 미래라는 시간개념은 실제적인 시간의 너머로 생각된다. 사사라는 시간은 개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사사기간 동안에 일어난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스스로의 기억이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그의 사사기간이 젊은 사람보다 길다. 공동체의 입장에서 보아도 개인의 사사보다 좀더 중요하고 크다는 것일 뿐이지 자체적으로 사사기간이 있다. 사사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실존을 의식하는 시간의 영역이고 그 속에서 그들 스스로의 짧은 미래 속에, 그리고 주로 자마니라는 과거 속에다 투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사는 그것 자체로의 짧은 미래와 역동적인 현재와 경험된 과거를 함께 지닌 완전한 혹은 충분한 시간인 것이다.

자마니는 사사와 필연적인 관계이며 그것 자체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지고 있다. 즉 사사는 ‘자마니에게 먹이를 준다.’든가 ‘자마니 안으로 사라져 들어간다.’고 표현할 수 있다. 자마니는 어떤 것도 그것을 넘어서서 더 갈 수 없는 그러한 기간이 된다. 자마니는 시간의 무덤이고 끝이며 모든 것이 휴지 점에 부닥치는 그러한 차원이다. 따라서 자마니는 모든 현상과 사건들을 모아놓는 마지막 창고이고 모든 사물이 이전도 이후도 없는 현실 속으로 흡수되는 시간의 바다이다.

자마니는 사사가 근거하고 있는 기초이며 또한 사사는 자마니에 의해 비로소 설명될 수 있고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마니는 소멸이 아니라 많은 일과 사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구전전통에서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듯이 신화와 전설에서 보여주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의 역사관도 자마니를 지향하고 있지 지극히 짧은 시간안의 미래나 존재하지 않는 미래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인들의 신화와 전설은 그 어떤 것도 세상에 종말을 가져올 수 없으며 인간의 역사가 사사로부터 자마니로 움직이는 리듬 속에서 영원히 계속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어떤 이는 역시 사건들을, 특히 사람들의 활동들에 대해, 그것들이 마쳐졌는지, 아직 진행 중인지, 혹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지 고려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마쳐지거나, 완벽히 마친 사건들이나 활동들은 다 마치지 못한 일들보다 더욱 현실적이고, 아직 시작되어지지 못한 것들 보다는 훨씬 더욱 그렇다. 단순한 기술체계를 가지고 있고, 일시적인 흥미 거리가 사회 활동으로 집중되는(시계, 달력, 연대기, 그리고 자연 현상들이 아닌), 토착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과거가 미래보다 훨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사회체계를 제공하는 것이 과거이고, 사회관계도 과거부터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전문화에서는, 사람들은 그들의 기본적 방향을 위해서 아직 진행 중인 어떤 것 보다는 과거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들에게는, 역사는 미래의 골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것은 세계의 기원, 인류의 창조, 인간의 역사와 전통, 혹은 그들의 사회로의 전개등과 같은, 사람들의 존재의 뿌리를 짚어주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견해에 따르면, 미래는 비현실적이다. 그것은 아무런 사건도 포함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런 종교적 혹은, 규범적인 중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 계절, 연령, 혹은 세대의 반복을 미래에 반영하고, 지금부터 이렇게 많은 단위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야기 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만약 아프리카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이미 일어난 사건들이 끝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인들은 ‘진보에 대한 신념’ 곧 인간의 활동 및 업적의 발전은 낮은 데서부터 보다 높은 데로 나아간다고 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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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간개념에 대한 이해

우리는 시간을 인간의 삶 속에서 이용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우리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것일까? 아마 누구도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일 것이다. 시간은 고정불변의 것이라기보다는 문화집단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고 있다. 분명히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 문화적 구성요소로서 시간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며 아울러 인간정신의 산물로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 현재, 혹은 미래에서 사건을 배치하는 것은 우리의 기준 틀에 달려있다. 언제 한 사건이 우리의 일시적인 삶 속에서 일어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아침식사와 점심식사 사이와 같이 사적인 사건들의 익숙한 연속선상에서 어떤 시점에 사건을 배치시키느냐에 달려있다. 하지만 우리가 비즈니스의 세계 속에서 우리의 활동을 계획해야 할 때에는, 우리는 시계 틀에 의존한다. 각 국가의 시간 계산은 국제적인 시간 계산을 따른다. 현대 세계는 비즈니스와 여행, 그리고 의사소통의 국제 시스템을 쉽게 하기 위해 시간대 별로 나누어져있다. 같은 방법으로, 지역적인 역사는 서양 혹은 이슬람의 연표와 같이 사람들이 그들이 세계 주변의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통계로 나타낼 수 있도록 해준 날짜의 일반적 체계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시간 계산의 보편성과 양의 정밀함은 사회 활동들과 그것들을 조정하는 방법과 범위에 관련되어 있다.

시간에 대한 주요한 그리고 세계적인 표시가 연속적인 일들, 일정기간과 과거, 현재, 미래의 개념,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시간 계산의 가장 기초적인 목표와 관련되어 있는 것은 사회적 조정을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 거리, 속도의 상호 관계는 더욱 복잡한 시간의 개념을 요구한다. 따라서 세계에서 시간 계산의 형태들은 일반적으로 매우 좋은 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아울러 아프리카인들의 시간에 대한 사고도 기본적으로 아프리카 사회의 사회적 기술적 복잡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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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글

아프리카인들의 시간개념은 어떨까?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한 가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아프리카인들의 시간개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케냐의 나이로비에 갔을 때 친분이 있는 나이로비 대학 교수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호텔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이 저녁 6시였는데 그는 7시 30분쯤에 나타났고 전혀 미안한 표정도, 왜 늦었는지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저녁은 우갈리과 차파티 그리고 수쿠마위키등 비교적 간단한 식사였는데 저녁 10시 30분에야 먹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화가 너무 났었지만 나중에는 아주 지쳐서 화내는 것도 포기하였다. 결국 숙소에는 11시 30분에야 돌아왔다.

아프리카에서 현지인들과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약속을 하면 제시간에 일이 시작되기보다는 언제나 늦게 시작되곤 한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대부분 아프리카인들은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특히 시골지역으로 가면 정말 답답할 정도로 무슨 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보다는 해시계와 달 시계가, 그리고 하루라는 시간이 더 중요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사람들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정말 시간개념이 없는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왜 늦었느냐?’, ‘약속시간이 이만큼이나 지났다’, ‘빨리 빨리 하자’등등 따지고 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천천히 해도 간다(Pole Pole ndio mwendo)'라는 말을 하면서 오히려 한 수 가르치거나 핀잔을 준다. ‘좀 늦기는 했지만 결국 할 일은 하지 않는냐.’는 식이다. ‘만약 일을 그 날에 다 못 끝냈으면 내일 또 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이다.

아프리카의 시간개념은 서구사회와 전통사회의 시계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 정확한 시간개념을 추구하기 보다는 상황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늦을 수는 있지만 반드시 가기는 간다.’라는 말은 이들의 시간개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미리 충고하지만 ‘늦다’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결코 아니라는 아프리카인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 마음 상하지 않는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서구식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든가 공공기관 그리고 비즈니스분야에서는 비교적 시간을 잘 지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인관계 속에서는 시간과 약속에 대해 관대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고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으로 생각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훌륭한 비즈니스를 하고자 한다면 공식적관계도 중요하지만 비공식적 관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공동체의식과 개인이 맺는 ‘관계’를 중시하는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비공식적 관계가 일을 아주 쉽게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이 될 때가 많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글에서는 아프리카인들이 시간에 대해 어떤 사고방식과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만약 아프리카인들의 시간에 관한 행동양식을 이해할 수 있다면 비즈니스를 위한 약속을 하면서 시간적으로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대안을 마련하여 일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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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직업과 사회적 지위

아프리카인들의 생활에서 집단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왔으며 친족 집단에 관하여 너무 많은 글이 발표된 나머지 다른 집단의 다른 원리들은 때때로 무시되고 있다. 일부 사회적으로 인정된 가치의 불평등한 분배에 기초한 부이다. 그리고 이 부에서 중요한 것이며 그것은 부인될 수 없다. 그리고 일부 사회에서 그것은 권력의 주요한 기초가 된다. 그러나 다른 사회에서는 종종 그 반대의 경우가 되기도 한다.

즉 어떤 사람은 영향력, 권력, 명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간주되기 때문에 부를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추측한다. 더구나 이들 후자의 특성들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개인적 성취도에 기초하는 것만큼이나 사회에서 그 개인의 세습 지위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씨족 성원들의 계급을 의미하는 귀족 계급으로 집약될 수 있는데, 이 계급은 그 집단에서 구성원의 자격을 토대로 하여 단독으로 또는 광범위하게 권력에 영향력에 접근할 수 있다.

전형적으로 그것은 사회의 귀족 계급을 형성하는 지배 씨족이 분명하며, 따라서 나머지 하층 계급의 서민들과 비교해 볼 때 특권적 지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생활 양식의 차이는 실제로 관직을 차지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수의 귀족을 제외하고는 아주 적으며 물질적인 중요성은 거의 없다. 비록 1/2을 약간 넘는 사람들이 부를 소유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차이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우간다의 니요로(Nyoro)족에서 예증된 바와 같이 아프리카 사회의 약 1/3은 계급 제도를 가지고 있다.

직업에 대한 집단화는 세계의 많은 사회에서 발견되는 사회적 분화를 이루는 또 다른 기초가 된다. 서아프리카의 기니아 해안을 따라 분포하는 지역은 동업자 조합(craft guilds)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 동업자 조합들은 규범을 정하고, 도제 제도를 운영하며, 가격을 조절하면서 정말로 직업적인 집단으로써 작동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더 널리 보급되어 있는 직업 조직의 형태는 직업특권계급(craft caste)으로써, 이것은 특히 서부 수단, 나일강 상류, 이디오피아와 아프리카 뿔지역에서 볼 수 있다.

특권 계급은 동족 결혼에 의한 세습사회집단이다. 즉 그 구성원들은 자기가 태어난 특권 계급 내에서 결혼해야만 한다. 따라서 그것은 폐쇄적인 제도이며, 출생을 통해서만 그 구성원을 보충할 수 있는 제도이다.

대부분의 유럽인이나 미국인들은 인도에서 시행되고 있는 카스트 제도라는 용어에 친숙하다. 그러나 이것은 특이한 카스트의 형태로써 복잡하다. 인도의 많은 특성들이 아프리카의 카스트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어떤 특권 계급이 멸시받는다는 개념은 아프리카의 모든 제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도의 제도에서 나타나는 강력한 계급조직의 특성이 아프리카에서도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특권 계급이 그 구성원들의 상호이익을 위해 행하는 일에 종종 부차적이다.

아프리카에서 특권 계급은 일반적으로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직업적 특성과 연관되어 있는데, 가장 흔한 것이 대장장이 일이다. 그 효과는 태어나면서 기능 전문가가 될 사람들의 집단을 배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제도는 도제 기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그 성원이 출생에 의하여 충족되기 때문에 관심있는 전문가의 부족으로 인하여 그 직업이 사라질 위험은 거의 없다. 적어도 어떤 아프리카 사회 즉 동북나이지리아의 마기(Margi)족과 같은 적어도 일부 아프리카 사회에서 각각의 특권 계급은 다른 특권 계급이 하지 않으나 필요로 하는 일을 수행한다. 따라서 그들은 상호이익을 위한 공생관계에 있다.

아프리카 사회의 약 1/5이 직업적 계급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5%는 주로 종족 특성에 기인한 특권계급제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난쟁이인 트와(Twa)족은 르안다의 닐로틱(Nilotic)과 반투족 사이에서 사냥과 수렵 특권계급으로써 살았다. 이 조직 형태는 독립 아프리카 정부 하에서는 종종 금지되어 왔다.

사회계층의 또 다른 형태는 일반적으로 노예로 불린다. 이것은 특이하게 복잡한 주제이다. 첫째, 많은 세월 동안 이 제도는 불법적이었고, 그것에 대한 묘사는 종종 불완전하고 부정확했거나 잘못되어 왔다. 둘째, 아프리카에 플래테이션 노예제의 적용과 유럽인, 미국인, 아랍인들에 의한 상업적 해외 노예무역은 토착제도를 변형시켰다.

이러한 것은 노예수요를 상당히 증가시켰으며, 더구나 토착 노예제도를 더욱 강도높게, 더욱 비인간적으로, 더구나 신세계 상업 무역같이 토착제도를 변형시켰다. 이러한 것은 노예 수요를 상당히 증가시켰으며, 더구나 토착 노예제도를 더욱 강도높게, 더욱 비인간적으로, 더구나 신세계 상업 무역같이 만들면서 왜곡시켰다. 우리는 아프리카 토착노예제도보다 신세계 상업노예제도에 더 친숙하다. 셋째, 아프리카 토착노예제도는 일반적으로 노예제도라는 용어로 이해되는 것과는 주목할 만하게 다르다는 증거가 있다. 아프리카 토착 노예제도가 상업노예와 관련있다는 함축성을 피하기 위하여 이 논제에서는 림브리(limbry)라는 용어가 아프리카 토착 노예제에 사용될 것이다.

아프리카 림브리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 구성원들이 사회의 일부분도 아니고 사회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 사회적 중간 단계에 정지되어 있는 한계적 인간으로 보는 경향이다. 이 계층의 구성원들은 자유인이 아니며, 주인이 있었고 주인을 위해 일해야 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사회에서 그들은 무생물인 것처럼 취급되지 않았고 부당하게 착취당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지위는 그들의 사회에서 그들이 무엇을 하는가 보다는 오해려 어느 위치에 있는가에 기초하였다. 즉 그들은 한계적인 인간이었고, 어떤 작가가 표현했듯이 그들은 사회적으로 죽은 상태였다. 이러한 상태로 이르게 되는 조건은 전쟁 포로와 중범죄인이었다. 이것은 일률적은 아니지만, 한번 확립되면 그 지위는 세습되는 경향이었다. 비록 미약하지만 현존하는 자료는 아프리카 사회의 80%가 림브리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 제도는 마기족 사회에서 운용되는 것으로 관찰되었는데, 신세계의 노예 제도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림브리 집단의 한 구성원은 부유하고 상당히 명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마기족 사회에서 하나의 중요한 정치적 지위가 이 계층의 구성원을 위하여 존재했다. 많은 아프리카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마치 그들 주인의 확대 가족의 일부처럼 배려되고 친절하게 대우되었다. 요약하며, 아프리카 림브리는 사회에의 참여가 제한된 제도적인 한계성의 형태를 띠지만, 상업노예제도와는 대조적으로 전체적으로 학대되거나, 비인간화되거나, 착취당하지 않았다.

세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아프리카에서는 다양한 직업이 있다. 변호사, 정치가, 회계사,. 컴퓨터 전문직, 엔지니어등등... 그리고 이런 전문가들은 사회의 지배계층으로서 다양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전문가들은 아직도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소수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는 직업들이 산업사회 이전까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이들 직업들은 직업과 지위의 관계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첫째로 농업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일반적인 직업이다. 농업은 불안정한 경제에 대항할 수 있는 하나의 울타리로 생각하고 있다.

☞ 나이지리아의 한 농부 : 살림이 넉넉한 한 사람도 종종 조그만 농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손으로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기쁨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들이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할 지라도 그들이 만약 경작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노래와 이야기들이 경작의 가치를 찬양한다. 가득히 찬 곡물창고는 부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둘째로 목축업이 있다. 동아프리카에서는 소사육이 주된 직업이며 소는 사회적 척도의 기준이 된다.

☞ 마사이(Maasai)족 : 여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소를 지키는데 할애한다. 그들이 결혼했을 때 신부값으로서 남편에 의하여 주어지는 소들은 여자의 아들들에게 상속되기 전까지 남편의 재산으로 간주된다.

셋째로 아프리카 사회에서 문화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대장장이, 음악가, 그리고 주술사(healer)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 서아프리카의 만데어로 yamakala라고 불리는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대장장이, 가죽업자, 그리고 가수(praise singers ; jeli)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물건을 가지고 일을 하는(work with materials)'사람들(철, 가죽, 그리고 말을 사용하여)이다. 이런 직업은 세습되며 결혼도 같은 직업을 갖은 사람과 해야 한다. 이들의 사회적 지위는 세속되는 왕족이나 통치계급에 비해서는 낮다.

만데족의 경우처럼 계급이 분명하게 고정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이지리아의 이보(Igbo)족 같은 경우는 사회적 지위가 더 유동적이다. 야망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재능을 이용하여 부와 권력을 갖을 수도 있었다. 만데족의 주술사들은 가난하지만 이보족의 유명한 주술사들은 거대한 부를 축적하여 호화스러운 현대적 가옥에서 거주하며 고가의 자동차를 소유하기도 한다.

현대 아프리카 사회에서 사회적 변동에 따른 직업의 결정적이고 본질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곳은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시장은 창고가 없이 이루어지는 노점 형식이며 여자들이 대부분 종사하고 있다(우리나라의 전통 장과 같다).

직업은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며 빈부격차는 커다란 사회문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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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밀스런 결사조직, 비의결사(秘儀結社 ; secret societies)

아프리카 사회구조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또 하나의 단체가 비의결사이다. 이것은 주로 서부 아프리카와 콩고분지에서 나타났던 사회제도이다. 이 비의결사는 사회를 통제하고 젊은이들을 어른이 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정교하고 오래끌었던 통과의례들은 비의결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어떤 때는 몇 년 동안 지속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의 힘과 영향력은 강한 종교적 제재에 의하여 후원되었다.

어떤 사회는 신성한 숲(sacred grove)을 소유하고 이곳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그들은 언제나 상징물을 구체화했고 의식을 위한 도구를 가지고 있었다.

비의결사는 통과의례의 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출계집단의 친족조직과 구별되는 사회조직이다. 그들은 각각의 아내와 남편 형제자매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가진 서로 다른 가족들이 모여 동맹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방법 때문에 사회는 하나의 조직원리(제도나 조직의 규칙)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원리들이 중복되어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복잡한 현상은 아프리카 사회를 강하게 결속시키기도 하며 유연성과 적응력을 갖게 하기도 한다.

☞ 이보(Igbo)족 : 소녀들을 특별한 장소에 격리 수용하여 놓고 살이 찌도록 잘 먹이고 몸에 기름을 바른다. 소녀들이 완전하게 살이 쪄서 볼이 둥글게 부풀고 젓가슴이 커지며 허리가 기름살로 뚱뚱해지면 마침내 그들은 결혼해도 좋은 적령기에 달했다고 본다.

☞ 시에라 레온(Sierra Leone)의 멘데(Mende)족 : 남자는 Poro라는 조직에 속하는데, 분쟁이 있을 때 사법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남자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와 Poro의 구성원 선출에 관여한다. 여자들은 Sande라는 조직에 속하여 여자아이들을 성인이 되게 하는 통과의례를 주관하고 치료를 위한 약재들과 의식에 필요한 지식을 전수한다. 이때 치료해주고 얻은 수입은 치료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멘데족의 것이 된다. 이러한 의식조직(ritual organizations)은 비밀스러운 것이며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나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5. 연령집단(年齡集團 ; age set)

연령에 의한 계층화는 아프리카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사회집단을 생성시킨다. 비록 그 제도가 아주 복잡해 질 수도 있지만, 기본 원리는 간단하다. 주어진 연령내에서 모든 사람들은 연령집단(age set)을 구성한다. 그들은 연령 등급이라고 불리우는 위치를 차지한다. 적절한 의식을 거행하면서 동아리 내의 일반적으로 연령차이와 동등한 간격으로 다음 나이 등급으로 옮겨간다. 이런식으로 그 사회는 그 구성원들의 통과를 통하여 수많은 연령 등급으로 나누어진다. 몇몇 연령 등급은 그것과 연관된 분명한 책임감이나 특권을 갖는다. 따라서 개인에게 대개 그들의 동료들로 구성된 준거집단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 연령등급체계는 사회의 목적을 성취할 것임이 있는 조직체를 구성한다.

연령등급제도의 변화는 한 등급내에서 몇몇 연령집단들을 포함하는데 한 연령집단에 입회하기 위한 공개 기간 다음에는 폐쇄 기간이 있어 입회하기 위해서는 다음공개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 연령등급제도는 단지 수명의 일부분에 해당하는데, 동북아프리카의 몇몇 종족들은 등급의 명칭이 제한되고 이따금 반복되는 순환연령등급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 순환제도는 그 사회의 나이든 구성원들이 젊은 구성원들이 속하는 등급의 명칭과 같은 명칭을 가진 등급에 속하는 상황을 유발할 수 있으며, 결국 그들 사이에 유익한 동맹관계로 이끌 수 있다. 연령등급은 동부아프리카에서는 매우 중요하나, 서부와 중부아프리카 지역에서도 또한 발견된다.          

관습을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또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서부터 고유한 명칭을 갖는 일련의 단계들로 이루어진 연령집단의 일원이 된다. 단계마다 독자적인 지위나 사회적·정치적 역할이 주어지며, 이때 각 단계는 주로 나이로 등급이 매겨진다.

☞ 수단 남부지역의 누에르족은 연령집단(남자들로 이루어진)이 사회계층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같은 연령집단 구성원들 사이는 서로 동등하지만 연령이 낮은 집단과 높은 집단 사이에는 차별과 종속관계가 있다. 연령집단은 소년에서 성년이 되는 통과의례를 기준으로 대략 10년의 간격을 두고 나누어지며, 누구나 평생 동안 처음에 들어간 집단의 일원으로 있게 된다. 누에르족에는 성년식 통과의례를 제외한 연령등급체계가 없으며, 각 연령집단마다 주어지는 명확히 규정된 역할도 없다. 맨위 연령집단의 일원들이 모두 죽게 되면 바로 아래 등급의 연령집단이 서서히 공인된 원로의 지위로 올라간다.

다른 부족사회에서는 집단마다 좀더 고유한 역할이 주어지는 연령등급이 있으며, 이에 따라 청년들이 군사훈련을 하고 군사원정대도 조직한다.

☞ 케냐의 난디족 사회에는 소년집단 2개, 전사집단 1개, 원로집단 4개로 이루어진 총 7개의 남자 연령집단이 있다. 전사집단이 약 15년 동안 전쟁을 치르고 부족을 다스리다가 그후 등급이 올라 원로집단이 되고, 부족을 다스리는 일은 바로 아래의 연령집단으로 넘어간다.

아프리카 사회에서 나이서열(age ranking)은 아주 중요하다. 연령질서(age order)는사회조직의 중요한 요소이다. 많은 아프리카 언어들은 영어에서 발견될 수 없는 장자(eldest son), 차자(second son) 또는 장녀(eldest daughter)같은 단어들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 가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아이들은 나이어린 아이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 쿠랑코(Kuranko)족 : 연장자가 나이어린 사람들을 '소유(owns)' 또는 '통제(rule)'한다고 말한다.

☞ 나이지리아의 이보(Igbo)족 : 가족 구성원들이 고기를 배분하는데 나이순으로 한다. 나이든 남자(senior male)는 머리부분을, 다음의 연장자는 목부분을  먹게된다. 즉 동물의 몸이 상징적으로 나이계급에 따라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남자들이 회의하는 방(meeting house)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을 때도 나이순으로 하며 음식이나 음료수도 언제나 연장자가 우선이다.

☞ 나이지리아의 오하피아(Ohafia)마을 : 나이가 어렸을 때는 여자와 남자가 하나의 연령등급을 갖게되지만 상위계열로 가게되면 그들은 두 개의 각기 다른 연령등급의 사회로 나누어 진다. Akapan이라고 불리어지는 남자사회는 분쟁을 다루고 마을을 운영한다. Ikperikpe라는 여자사회는 여성에 대한 모욕을 한 남자와 여자를 통제하거나 처벌한다. 아내에게 육체적 학대나 돈을 요구하는등 피해를 가한 남편들의 잘못도 포함된다. 여자에게 외설적으로 말을 했다든지(특히 생식기에 대해 언급하면서) 남자가 고의로 여자의 침실에 침입한 사건도 다룬다. 이런 사람들은 그 사람의 문에서부터 북을 두드리며 행진하게 되는데 당사자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또 벌금을 물린다. Ikperikpe의 여자 연장자를 '여자추장(female chief)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노인정치, 장로정치 구조(gerontocratic structure)는 유사이래로 인간의 계속성과 함께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은 유아, 아이, 배우자, 부모,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로 이동해 간다. 사회적으로는 통과의례나 연령등급, 그리고 비의결사같은 단계를 거쳐 옮겨가게 된다. 질병으로 일찍 죽지 않고 많은 아이들을 생산하고 길러낸 사람들은 연장자로서 사회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 노인정치 사회에서는 연장자들의 회의에 상당한 권위가 있으나 그들의 통치는 서투르거나 압제적인 것이 아니다.

연장자들이 죽으면 그들은 명예스러운 조상들로서 후손들에게 기억된다. 또 후손들은 그들의 살아있는 집합적인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의 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조상숭배를 'ancestor worship'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worship'이라는 말은 아프리카인들과 조상들의 관계를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조상숭배는 존경, 경외, 숭배등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조상숭배는 현실의 일시적인 순간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서 사회조직은 마을의 사회적 영역뿐 아니라 전임자들의 사회적 시간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조상들은 초연장자(super-elders)다. 그들은 가장 최고의 위치에 있다. 왜냐하면 축적된 모든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며 결과적으로 어떤 종류의 불사, 불멸을 얻었기 때문이다.

연령집단은 일반적으로 동남부 아프리카의 목축사회에서 나타나며 서부아프리카에서 널리 퍼져있었고 전통적으로 사회구조의 가장 중요한 구조였다. 이것은 동시대성에 기초한 남자들의 단체이다. 청소년기로부터 통과의례를 거치는 것을 시작으로 남자들은 나이에 따라 연령집단에 들어가며 평생동안 연령집단을 옮겨 다닌다. 구성원들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며 의무와 특권이 있다. 전형적으로 연령집단은 4가지 등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훈련기간에 새로 가입된 남자들, 둘째로 방어를 전담하는 전사집단, 셋째로 통치에 관여하는 어른들, 넷째로 사회의 연장자들이 속한 등급이다.

☞ 남아프리카의 스와지(Swazi)족 : 연령등급이 6년으로 편성되었다. 각 연령등급은 각자의 토템과 노래, 그리고 표시를 한 기장(깃발)이 있었다. 남자들은 왕이 허락하기 전에는 결혼할 수 없었다. 각각의 연령집단은 지도자를 지명하며 젊은 남자들은 왕에게 봉사한다. 연령집단의 구성원들이 명령을 내리면 젊은 남자들은 모든 마을과 가정에서 뽑혀지고 친족집단과는 분리된다. 다음 단계로 옮겨질 때는 축제가 열린다. 그리고 한 특정 집단의 구성원들이 살아남을 때까지 그 연령집단은 유지된다. 재산은 갖지 않는다. 현재는 이주 노동자로 전락했다. 오늘날 스와지족의 연령등급은 중요하지 않다.

☞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인 에키티(Ekiti)족 : 식민지화하기 이전에는 연령등급이 아주 강력했다. 모두 다섯 개의 연령등급으로 나누어져 책임과 의무가 분명하였다. 마지막 2개의 등급은 전사계급이었다. 오늘날에는 지원자들이 중심이 되어 상호이해단체(mutual-interest association)로 변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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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할례(circumcision)

할례는 아프리카인들의 통과의례중 중요한 의식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음경의 표피 전부 또는 일부를 자르는 행위. 이 의식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할례가 하나의 의식으로 여러 민족에 분포된 점과 금속 칼보다는 돌칼을 널리 사용한 점은 이것이 매우 오래 전부터 있었음을 암시한다.
할례를 전통의식으로 행하는 곳에서는 사춘기 전이나 사춘기 때 행하며, 이슬람교도들 중 어떤 이들은 결혼 직전에 행하고,

어떤 이들은 종교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나 출생 뒤 곧바로 행한다. 유대인들이 남자아이를 낳은 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의 일부 내용에 따른 것이다. 이처럼 유대교로 개종하는 모든 남자는 의무적으로 할례를 받도록 되어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는 교회에 들어온 자에게 이러한 '모세의 법'을 의무조항으로 하지 말 것을 정했다(사도 15). 나이에 상관 없이 행해졌으며, 일반적인 경우 할례를 받는 사람이 그가 속한 단체에 정식으로 가입함을 뜻하거나 그가 어떤 지위를 얻었음을 가리켰다. 따라서 할례를 통해 사회적 지위·권리·신분 등이 확정되었다. 세계 도처에 있는 여러 전통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유대인, 이슬람교도, 일부 그리스도교도들 가운데서도 이 행위는 심오한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의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생리학적인 면에서 볼 때 음경의 표피를 제거하여 음경귀두를 드러내는 이 행위는 피지라고 불리는 치즈 모양의 악취를 풍기는 분비물이 쌓이는 것을 방지한다. 피지는 불쾌감을 주며, 전염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다소 줄어드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영어권 국가들, 특히 미국에서는 신생아들에게 의료상의 할례를 행하는 것(포경수술)이 관례로 되어 있다.

점점 많은 수의 외과의사들이 몇 가지 위생상의 이유로 포경수술을 관례적으로 행하는 일을 거절하고 있지만, 몇몇 부모들은 그 아이의 아버지가 할례를 받았다는 이유와 또는 이 의식이 그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아이들이 할례를 받아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음경암의 발생률이 할례를 받은 남자들에게서는 적은 것이 사실이지만, 위생의식이 높은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에게서도 그 발생률은 적게 나타난다.

☞ 동부 아프리카의 키쿠유족의 경우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는 아무리 나이가 많이 들었다 할지라도 결코 성인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루오족의 경우에는 할례를 받지 않고 있다. 따라서 키쿠유족의 세계관과 의식에 의하면 루오족 부족민들은 한낱 아이들의 세계 속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남자들에게 행해지는 할례는 현대 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포경수술에 해당되기 때문에 방법상의 문제 - 예를 들어 무자격 의료인에 의한 시술이나 소독되지 않은 도구의 사용 같은- 만 종종 거론될 뿐 인권유린의 차원에서 부각된 적은 없다.

☞ 남부아프리카의 코사(Xhosa)족 : 현대에 들어와서 할레시술(ukoluka)로 인해 성기가 부패되고 절단되는 상황도 발생되고 있으며 심지어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동부 케이프(Eastern Cape)의 한 전통의사(ikankatha;할레 시술자)는 한 건의 시술당 약 R50와 한병의 브랜디를 받지만 이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전통의 일부로서 생각한다. 또한 할레에 대한 기술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도제제도에 의해 전수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숙련된 전통의가 사라져감에 따라 경험이 부족한 소위 "야메 의사(bush doctors)"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사고를 유발하고 있다.

음핵절제술이라고도 불리는 여성의 할례는 피를 뽑는 것에서부터 음부봉쇄(음핵, 소음순과 대음순의 2/3를 제거하고 대음순의 나머지 부분은 뒤의 작은 구멍과 연결되도록 함)에 이르는 의식적 수술과정이다. 이 의식은 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 말레이 군도, 에티오피아, 이집트,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 브라질, 멕시코, 페루와 중동·아프리카·서아시아·인도의 이슬람교도들 사이에서 널리 행해진다. 이 수술은 보통 중년의 부인이 행한다. 이 의식은 종교적·윤리적 전통의 일부로 생각되며, 책임 있는 성인이 되는 필수적인 단계로 간주된다.

부족에 따라 음핵을 부분적으로 잘라 내거나 외음부 전체를 절단하는 등 조금씩 상이하며 할례를 행하는 시기도 생후 7일 만에 행하는 부족이 있는가 하면 사춘기 시기에 행하는 부족도 있다. 할례를 행하는 도구도 소독되지 않은 면도날이나 칼이 주로 쓰이고 봉합시에는 바늘이나 가시가 이용된다. 사춘기에 이르러 할례를 행하는 부족 사회는 할례를 받은 소녀를 소녀에서 여인으로, 미성숙한 개체에서 성숙한 인격체로, 불완전한 자에서 완전한 자로 변화시키는 것이기에 부족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중했다.

여성에 대한 할례 행위로 야기되는 부작용을 열거해 보면 골반염, 소독되지 않은 기구 사용으로 야기되는 파상풍, 각종 감염, 분만 합병증, 궤양, 불임증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심리적 충격, 원만한 성생활 장애등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내려오는 이러한 관습이 여성에게 가해지는 고통의 무게는 형언하기 힘들다. 개인에게 가해지는 고통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부작용이 있다. 할례를 받는다는 것이 성인의 세계로 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할례 의식을 받고 나서는 학교를 그만두고 결혼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발전의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여성 할례의 주요 목적은 여성의 성적 욕구를 억누르고 결혼하기 전까지 순결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함인 것을 고려하면 남성에 의해서 강요된 순결의 신화임을 알 수 있다. 여자의 성기를 성적인 즐거움과 쾌락이 아닌 생산의 도구로서만 여기는 남성중심의 가치관임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적인 측면과 결부 지어 설명하려는 시도도 결국은 강요된 순결로, 육체적 정결함과 종교적 청정함과의 상관관계를 억지 결부시켜 생각하려는 발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케냐에서는 1982년 다니엘 아람 모이 대통령이 여성 할례를 금지시켰으나 여성 할례 금지령을 위반하여 법적 제재를 받은 예가 거의 없다. 케냐에서는 모든 부족 사회에서 할례가 실시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마사이, 삼부루, 키시, 메루족 등의 부족 공동체 사회 속에서 뿌리깊게 남아 있다. 케냐 여성의 약 50%, 즉 절반 정도의 여성들이 아직도 할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할례가 이들의 의식 속에 얼마나 깊이 각인 되어 있는지 절감할 수 있다. 아프리카 전체적으로는 주로 중북부 아프리카에서 광범위하게 실시되고 있고 약 26여개 나라에서 1억에 이르는 여성들이 소녀에서 여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의식을 아직도 치르고 있다.

최근에는 할례 시술 방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거의 드물어 현재 할례를 행하고 있는 노년층이 물러나면 할례를 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족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에 할례 전통 역시 수그러들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부족의 고유한 문화 및 가치가 희미해져 가고 있는 도시 지역보다는 인습과 전통을 고수하는 농촌 지역에서 할례가 많이 행해지고 있으며, 서구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여성 할례 자체를 미개하고 버려야 할 관습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여성 할례라는 오랜 전통이 설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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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통과의례(通過儀禮 ; initiation rite, passage celebration, passage rite, puberty rite)

아프리카에서 통과의례는 젊은이들이 성숙한 인간으로서 또 책임 있는 존재로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공동체의 특권과 의무를 갖게되며 교육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들은 새로운 권리를 전수 받고 사회는 그들이 새로운 의무를 수행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성생활, 결혼, 자녀의 출산, 가족에 대한 책임 등에 대한 일들을 준비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기간동안 고통을 견디는 것을 배우고 서로 함께 사는 법을 배우며 순종하는 것을 배우고 남녀관계의 비밀과 신비를 배운다.

아프리카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성년이 되는 통과의례는 현대생활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년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가 개인의 삶이 지닌 전통적인 순환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는 곳에서는 여전히 그러한 관습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나이지리아의 오하피아(Ohafia)마을의 otumo 통과의식 : 12월의 뜨거운 여름날에 북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하나의 상징물이 나타난다. 라피아(Raffia) 야자 잎으로 둘러싸여 있는 상징물의 꼭대기는 잘 조각된 나무머리가 장식되어 있고 이 상징물은 마을을 지나가고 있다. 이것은 구체화된 하나의 정신이다. 짧은 loincloths(미개인들이 허리에 두르는 간단한 옷)를 입은 젊은 남자들이 그들의 몸을 하얀 분필로 칠하고 둘러싸고 있다. 이 남자들은 군중들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막대기를 휘두르고 있다.

이 상징물은 음악과 함께 흔들리며 노래가 불리어 진다. 잠시 후에 이 상징물은 남자들의 모임장소로 사라진다. 그때 거의 100여명의 여자들이 길로 행진하며 화답의 노래를 한다. 손에는 하얀 손수건이 쥐어져 있고 음악에 맞추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루종일 가장무도회, 노래, 춤은 모든 종류의 축하연이 계속된다.

통과의식은 특별한 연령집단이 그 사회에서 성인으로서 인정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남자와 여자는 그들의 나이에 맞게 연령집단에 소속되며 일생동안 연령집단의 구성원에 속한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들의 연령집단은 다양한 연령등급을 갖게된다. 가장 어린 등급은 길이나 시장을 청소하는 아주 작은 일을 한다. 만약 otumo의식을 치른 사람이라면 이 연령집단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책임 맡는다. 기금을 모으고 마을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사업에 노동력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멀리 떨어진 오지에 전기를 공급하고, 학교, 도서관 그리고 시장을 건설한다.  대개 40-50세가 되었을 때 그들은 이 otumo의식을 마친다. 이 의식을 마쳤을 때 최고의 연령등급(senior age grade)에 있는 사람들은 마을을 운영하는 책임이 있다. 그들이 더 나이가 들었을 때는 더 나이들은 연장자의 위치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들은 통치자가 된다. 연장자에 의한 통치는 아프리카의 마을 단위의 사회에서는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회는 노인정치, 연장자 정치(gerontocratic)로서 말해질 수 있다.

☞ 아캄바(Akamba)족의 통과의례 : 아캄바족의 통과의례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이전까지만 해도 누구나 두 번째까지의 과정은 거쳐야 했지만 세 번째 단계는 40세 이상의 남자들에게만 행하는데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이를 통과하였다.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으면 아캄바족의 완전한 성원이 될 수가 없다. 더욱이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를 먹고 몸이 큰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통과제의를 거치지 않는 한 그는 아직도 어린 소년이나 소녀라고 간주하고 멸시를 한다.   아이들은 4살에서 7살 사이에 통과의례의 첫 번째 단계를 거친다.

이 의식은 비교적 건조하고 서늘한 8월이나 9월에 행한다. 남자아이들에게는 할례를 행하고 여자아이들에게는 음핵절제를 행한다. 의례일자는 지역별로 공고가 되고 그날이 오면 모든 후보자들은 부모와 친척들과 함께 그 의식을 행하는 집으로 모여든다. 남자아이들에게는 남자 전문가가 할례를 하고 여자아이들에게는 여자 전문가가 음핵절제를 행한다. 그때에는 각기 특별한 칼을 사용한다. 그리고 육체를 베어내는 이 행위를 그들은 이른 아침에 행한다. 남자의 경우에는 성기의 포피를 잘라내고 여자의 경우에는 음핵의 일부를 잘라낸다. 남자들은 둥글게 모여서 남자아이의 의식을 주시하고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여자아이를 둘러싸고 그 의식을 관찰한다.

이 수술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사람들은 아이들이 울거나 소리치지 않고 이 아픔을 견디도록 둘레에서 격려를 해준다. 용감하게 이를 견디어낸 아이들은 공동체 전체가 높이 치하해 준다. 이 일이 끝나면 춤을 추고 노래하고 술을 마시고 살아있는 사자에게 헌작을 하고 제물을 바치면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긴다. 그 후 한  2주일이 지나면 상처가 치유되어 가는데 그때에는 친척들이 그 소년이나 소녀를 찾아와 그들에게 닭이나 돈이나 장신구, 심지어 양이나 소등, 자기네들이 마련할 수 있는 한 온갖 선물을 가져다준다.

이것이 통과의례의 첫 번째 단계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성기의 포  피를 잘라내는 것을 유년기로부터의 단절을 상징하고 극화하는 것이다. 이 행위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탯줄을 끊는 행위와 일치하는 현상이다. 할례 이전의 성기는 아이가 무지의 상태, 무활동의 상태, 잠재적인 불능의 상태(무성(無性)의 상태)에 종속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그러한 예속의 관계가 단절되면 그 젊은이는 무지와 무활동의 상태로부터 풀려나 자유스럽게 된다.

그는 다른 상태, 곧 지식과 활동과 출산의 단계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는 한 그는 결혼을 할 수도 없다. 아이를 낳거나 심지어 임신을 할 수도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피를 땅에다 흘리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땅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고, 그래서 땅에다 술을 부음으로서 비로소 그들에게 도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살아있는 사자와 아이와의 신비적인 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때 흐리는 피는 새로운 탄생을 위한 피인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을 주고 그것을 견디어 내도록 격려하는 것은 이후에 살아갈 동안 부닥칠 곤란과 고통을 감내하기 위한 훈련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캄바족은 무엇보다도 육체적인 고통이나 정서적인 아픔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단 아캄바족만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의 온갖 어려움에 둘러싸여 있어, 고통을 감내 해낸다고 하는 것은 아프리카인들 누구에게나 중요한 덕목이 되고 있다. 친척들이 수련자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은 그 젊은이들이 공동체에 전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을 환영하는 징표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러한 선물을 받음으로서 그 젊은이는 이제 자기 자신의 소유를 지닐 수 있게 되었음을 상징하고 보여주게 된다. 비록 개인의 소유가 전체 협동적인 집단과 함께 공유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나의 것이다"라고 우선 언표할 수 있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권리인 것이다. 이러한 재산의 소유를 거쳐 다음의 중요한 단계에 이르게 된다. 곧 결혼 기간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춤추고 함께 즐기는 행사는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해주고 전체 집단의 협동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젊은이는 첫 번째 통과의례를 거쳐야 비로소 이러한 공적인 춤의 잔치에 참여할 수가 있게 된다. 살아있는 사자에게 제물을 바치거나 헌작을 하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과 죽은 사람들과의 관계,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관계를 강조하고 또 새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통과의례를 거치기 전에 아이의 아버지가 사망했을 경우, 그 아이에게는 보통 다른 아이들보다 아주 늦게 통과의례를 시행해준다고 하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하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통과의례가 젊은이에게 막중한 책임을 감당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른이 없는 집안의 일을 수행하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그 아이가 성숙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의례와 두 번째 의례 사이에 어떤 일정한 기간이 설정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대체로 두 번째 의례는 첫 번째 통과의례가 끝난 지 몇 주일 안에도 할 수 있고, 나이가 15세 가량 되었을 때 하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첫 번째 의례는 육체적인 것이고 두 번째 의례는 주로 교육적인 것이다.

두 번째 의식("위대한" 또는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라고 부른다)은 그때 마침 집안에 후보자가 없는 가정이 주관을 한다. 이 의식을 주관하는 일은 자기들의 살아있는 사자가 그 일을 자기들로 하여금 맡도록 허락해준 것이라고 생각해서 커다란 특권이라고 여긴다. 의식은 4일간에서 10일간까지 계속되기도 한다. 그 기간 동안에 얼마간을 후보자는 사람들과 격리되어 동네밖에 세워놓은 초막에서 지낸다. 그때 그 젊은이들에게 남성이나 여성됨의 모든 것을 가르쳐줄 책임을 지고 있는 고문 격인 사람들이 수련자인 젊은 사람들과 함께 동행한다.

아캄바족은 이러한 어른들의 임무를 마치 닭이 병아리를 깨기 위하여 알을 품는 것과 같다고 해서 "통과의례의 수련자들을 품에 안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첫째 날에 후보자들은 교훈적인 노래들을 배운다. 그리고 상징적인 장애물들과 부닥친다. 둘째 날에는 "음부샤(mbusya ; 코뿔소)라고 알려진 무서운 괴물과 만난다. 어떤 지역에서는 남자아이들만이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또 다른 지역에서는 남녀 모두가 이러한 과정을 겪게 하기도 한다. "음부샤"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나무토막과 나뭇가지들을 얽어 만든 것인데,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서 마치 커다란 괴물처럼 울부짖는다. 후보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른다. 이는 그 의례가 지니고 있는 비밀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의식이 끝난 뒤에도 아직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이 비밀을 절대로 누설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후보자들은 이 "음부샤"를 적을 대항하듯이 용감하게 활을 쏘면서 무찌르기 위해 대든다. 그 날 저녁에는 첫 번째 의례를 행한 남녀간에 제의 적인 성교를 행한다. 후보자의 부모들도 셋째 날, 그리고 일곱째 날에 역시 제의 적인 성교를 한다.

셋째 날에는 후보자들이 어른들의 생활을 연습한다. 남자들은 모의 활과 화살을 가지고 사냥을 하러가고, 여자들은 작은 나뭇가지들을 자른다(이것은 집에서 사용할 땔감(화목(火木))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날 늦게 첫 번째 통과의례 때에 수술을 담당했던 사람이 나와서 후보자에게 술을 붓고 축복을 해준다. 그리고 나면 아이들은 다시 수풀 속에 있는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돌아가면 많은 극복해야할 장애들이 마련되어 있다.

남자아이들에게는 특별한 지팡이 같은 나무토막을 하나씩 주는데 언제나 그것을 잃어버리지 말고 잘 지니고 다녀야 한다. 이 지팡이를 가지고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에게 상징적인 성행위를 한다. 다음 날에는 그 지팡이에 새겨져 있거나 모레 위에 그려져 있는 수수께끼나 알아맞히기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그 후에는 남자들의 경우 사탕수수를 훔쳐오게 하는데, 이는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누구나 받아들이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허락된 "도둑질"이다. 그 사탕수수를 가지고 아이들은 의례를 주관하고 자기들을 돌보아주는 어른들을 위하여 술을 빗는다.

닷세째에는 후보자와 의례 주관자들이 함께 신성한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간다. 신성수(神聖樹)는 흔히 강변에 있는 야자수나 시카모르 나무이다. 주례자가 나무의 즙을 내가지고 이것을 후보자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주면 후보자들은 그 즙을 먹는 척 한다. 이 의식을 거치고 나면 이전까지는 먹지 못하게 했던 어떤 음식들도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한다.  또 이 나무 밑에서 수련자들의 성기에 작은 상처를 내고 그 상처에다 술을 붓기도 한다.

엿새째에는 아주 평화롭게 보낸다. 일곱째 날에는 남자들은 모의로 소를 약탈하기 위한 습격을 하고 여자아이들은 그때 적이 쳐들어왔다고 울부짖는다. 이러한 행사를 쟁점으로 해서 모든 의식이 끝나면 젊은 사람들은 마침내 제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부모들은 그날 제의 적인 성교를 한다.

너무 장황하게 서술이 된 것 같기는 하지만 통과의례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좀 상세한 묘사가 불가피한 것 같다. 이 의례를 통하여 분명히 떠오르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젊은이들은 수풀 속에 특별히 마련한 초옥에서 함께 살면서 이른바 "협동해서 산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그들의 생각 속에 깊이 집어넣을 수가 있다. 이곳에서 그들은 축소판 사회생활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다.

주례자는 나이가 많은 어른의 역할을 한다. 즉 자기의 친부모이거나 아니거나 간에 젊은이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을 공경하는 것이야말로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그들을 격리시켜 수용하는 일은 후보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경험하고 행하는 것에 스스로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이 된다. 동시에 그러한 격리는 마치 죽음의 현실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이 의례는 젊은이들에게 개인적인 하나의 새로운 삶의 리듬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이 속해 있는 보다 광범위한 사회 전체에 있어서도 하나의 새로운 리듬이 되고 있다.

이 격리 기간이 끝나면 그 젊은이들은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남녀, 부모가 되고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자격을 갖출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그렇게 인정을 받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의적인 침략과 공격, 상징적 성행위 등이 그 의례의 중요한 일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코뿔소"로 꾸며 놀라게 하는 시련도 결국은 그 의례의 진지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동시에 후보자들로부터 두려움을 몰아냄으로서 위기가 닥칠 경우 달아나지 않고 그들 자신과 가족들을 용감하게 방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특별히 만든 나무토막에 새겨진 수수께끼나 모래 위에 그려진 그림을 풀이하는 일은 모두가 지식을 상징한다.

이 의례를 통하여 후보자들은 완전히 앎이라는 것에 가까이 가게 되는 것이다.  즉 수련자들은 이제까지 특정한 집단이 배타적으로 자기들끼리만 알던 모든 그 부족의 비밀한 삶과 지식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성수에서의 의례는 종교적인 삶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자를 방문하는 것,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다고 믿어지는 영을 방문하는 상징적 행위인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의례는 과거와의 연계를 재생시키는 것, 곧 영적 실재와의 유대를 재현하는 것이고, 아울러 살아있는 사자는 그들과 함께 "현존"하고 있음을 깨우쳐주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먹지 못하도록 한 음식을 후보자들에게 먹어도 좋도록 허락하는 것은 공동체의 삶이 지닌 다양한 생활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상징적이고 극적인 절차이다. 신성수 아래에서 성기에다 가벼운 상처를 내는 것은 신이 보는 데에서, 뭇 영들 앞에서, 살아 있는 사자와 인간들의 공동체 앞에서 성이 신성한 것임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그들이 집에 되돌아오는 것은 하나의 부활의 경험일 수밖에 없다. 죽음이 극복되고 격리가 끝나며, 이제는 새로운 남녀가 되어 그들 공동체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남녀로 사회는 그들을 받아들이고 또 존경한다.

이 모든 의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부모의 제의적 성교는 또한 그들의 자녀들이 다산다복(多産多福)하게 되었다는 것, 그들의 자녀들이 이제는 생명의 불꽃을 타오르게 했다는 것, 그리고 사회적인 의미에서나 교육적인 의미에서나 이제는 실제적으로 새로운 세대가 태어났다는 것을 상징하는 몸짓이다.

아캄바족의 남성의 경우는 40세가 넘으면 또 다른 세 번째 통과의례를 거친다. 실제적으로는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의례를 거치고 있고, 또 아주 그 내용이 절대적인 비밀이기 때문에 그 의례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은 일종의 제의적 신비경험과 같은 것으로, 실제적인 제의가 끝나면 그 제의를 어떻게 거쳤는가 하는데 따라 여러 등급이 주어진다. 여러 가지 행사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의례는 인내심을 시험해보는 가혹한 고통을 가하는 절차가 있다.

그러한 시련을 겪는 동안 수련자들은 자기 자신이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을 해낸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인식하지도 못한다.  그때 후보자들은 완전히 스스로를 "상실"하는 상태에 빠져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 의례는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비밀로 행해지는데, 비밀을 보장한다는 서약을 아주 엄격히 하기 때문에 후에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사람들조차도 그 의례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말하려고 하지 않을 정도이다.

☞ 마사이(Maasai)족의 통과의례 : 마사이족은 젊은이들이 12살이나 16살 될 때까지 4년 혹은 5년에 한 번씩 몇 차례 할례를 행한다. 그리고 함께 할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들끼리 모여 일생 동안 지속되는 동년배집단을 구성하고 새로운 특별한 이름을 갖는다. 이 의례의 준비로 우선 모든 입후보자들은 흰색 진흙을 온몸에 바르고,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은 채 함께 모인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두 달 동안 여러 지방을 옮겨다닌다. 의례가 행해지는 전날이 되면 소년들은 찬물에다 온몸을 씻는다.

그것이 끝나면 할례를 행하는데, 그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황소가죽에 담아서 각 소년의 머리 위에다 붓는다. 그 다음에는 나흘 동안 이들을 격리해두었다가 나흘이 끝나면 여자 옷을 입고, 흰 진흙을 얼굴에 바르고, 타조 깃털로 손을 장식한다. 한두 주일 후에 할례 받은 성기가 치유가 되면 그들은 머리를 삭발한다. 새머리가 자라면서 그들은 비로소 전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여자들의 경우에는 성기의 일부를 자르거나 뚫는다. 그들은 특정한 나무(죽은 야자수)의 잎이나 풀로 머리를 장식한다. 그리고 나서 상처가 다 치유되면 이제 결혼을 할 수가 있게 된다. 어떤 지역에서는 남자들처럼 여자들도 삭발하는 경우가 있다. 이 예에서도 우리는 아캄바족의 경우에서와 동일한 유형의 의미를 찾아볼 수가 있다. 이 의례의 바닥에 흐르는 강조는 다른 것이 아니고 유년기로부터의 단절과 성년에로의 결합이다. 성기를 단절하거나 뚫는 것, 머리를 깎는 것등은 모두 하나의 존재양태를 단절하고 다른 존재양태로 이입하는 것을 상징한다.

얼굴을 흰 진흙으로 얼룩지게 하는 것은 새로운 출생,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의례를 마치면 남자들은 하나의 전사로서의 생애를 시작하게 되고, 여자들은 결혼을 하게 되며, 때로는 그 의례가 끝나는 즉시 실제로 결혼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세대의 리듬은 극화되고 연출된다. 함께 통과의례를 겪은 사람들은 여생을 신비스러운, 그리고 제의 적인 유대관계를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사실상 그들은 한 몸이고, 한 집단이고, 한 공동체이며, 한 백성인 것이다. 그들은 온갖 일을 서로 돕고 살아간다.

한 사람의 아내는 같은 연령집단의 다른 남자들의 아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집을 방문하면 그 집의 남자는 그 찾아온 사람에게 자기 아내와 동침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그 남편이 집에 있든 없든 그것은 상관이 없다. 이것은 집단의 연대성을 긍정하는 깊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각 개인은 "나는 우리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즉 우리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있는 것이다"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연대성은 안정감, 일체감, 협동적인 실존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 등을 창조하고 제공한다.

☞ 난디(Nandi)족 여성의 통과의례 : 이 종족의 여성 통과의례는 어떤 종족의 경우보다 가장 빈틈없이 세세하게 짜여져 있다. 난디 여성 통과의례는 "성인이 되기 위한, 그리고 가정주부가 되기 위한 준비"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의례를 통과하지 않으면 어떤 여자도 결혼할 수가 없다. 통과의례를 행하기 훨씬 전에 소녀가 10세쯤 되면 그들은 시키로이노(sikiroino)라고 불리는 장소에서 남자들과 함께 잠을 잔다. 이것은 의무적인 것이어서 소녀가 거절을 할 경우,  남자아이들이 여자를 때려도 부모가 전혀 간섭을 하지 않는다.

이 의례는 여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남자들에 대해 행동할 것인가, 또 어떻게 자기들의 성욕을 제어할 것인가를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남녀가 함께 잠을 자기는 하지만 절대로 성교를 하도록 하지는 않는다. 후에 소녀들은 처녀성을 검사 받는데, 그들 중의 누구라도 처녀성을 잃은 것이 드러나면 그 소녀들 전체와 그들의 부모들은 커다란 수치로 느끼고 몹시 분개한다. 어떤 경우에는 처녀성을 잃은 소녀를 창으로 찔러 죽이고, 그렇지 않은 소녀들에게는 소나 양 등의 선물을 주기도 한다. 통과의례를 행할 때가 되면 여러 가족들이 자기 딸들을 데리고 나와서 함께 그 의례에 참여하게 된다.

대체로 소녀들이 그 의례를 위하여 잘 아름답게 차려 입도록 권고하고, "구슬로 만든 모자와 넓적 다리와 발목에다는 종(鐘)"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마련해 준다. 이렇게 무거운 차림을 하고 소녀들은 자기 친척들에게 돌아다니면서 의식을 행할 날짜를 알려준다. 넓적다리에다는 종은 한쪽에 4개씩 도합 8개를 다는데, 이것은 소녀들의 통과의례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표시가 된다. 정해진 의례일의 전날 저녁에는 소녀들이 남자 친구들과 함께 시키로이노에에서 잠을 잔다. 소녀들은 자연히 흥분을 감추지 못하게 된다. 이는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커다란 행사이기 때문이다.

"모든 고통과 두려움을 무시할 수 있고, 그 소녀들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에게 하는 일종의 광증 같은 것이 그들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상태야말로 그들이 어떻게 그처럼 어려운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고, 그 고통스러운 수술을 견디며, 자기를 지탱할 수 있는가를 설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된다."

의식이 있는 날 아침, 소녀들은 "스승"이나 "감독자"들과 함께 수풀 속에 들어가 나무를 한다. 그런데 나무를 베는 일을 하나의 의식으로 행한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승과 함께 도끼자루를 같이 쥐고 한 토막의 나무만을 자르는 것이다. 이 행위는 후보자들의 협동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고, 이러한 행사를 통하여 이미 그들은 서로가 하나의 몸, 하나의 집단임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 같이 가는 스승을 모티리오트(motiriot, 복수일 경우에는 모티레니크(motirenik))라고 부르는데, 이 사람들은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가르쳐주며, 함께 잠을 자면서 의식이 다 끝날 때까지 언제나 후보자들과 같이 행동한다. 스승인 이 부인들은 그 후보자들의 일치의 상징이고, 상담자이며, 그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원천이 되고 있다.

의례를 준비하는 부인들이 의례를 행할 집안에다 쐐기풀을 마련하는 동안, 소녀들과 그들의 남자친구들은 함께 춤을 춘다. 이 춤은 밤늦게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이 춤이 끝나면 육체적인 의례가 시작된다. "여자가 앉으면 끈으로 음핵을 잡아맨다. 음핵의 출혈이 과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소녀들은 다시 한번 춤을 추며 뛰어 돌아다닌다. 이렇게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춘다. 모두 지쳐 쓰러지면 함께 모여 나이가 많은 어른이 나와서 스승들(motirenik)의 손이 능숙하고 가볍게 움직여 일이 효과적으로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그러면 모두가 "가볍게(wisis, 무겁지 않게)하고 되뇌면서 그 기도에 공감을 표현한다.

소년들은 소녀들을 향해 겁쟁이라고 소리를 치던가, 온갖 모욕적인 언사를 쓰면서 그들을 화가 나게 한다. 이 같은 행동은 소녀들의 용기와 기개를 자극시켜 실제 수술이 행해질 때 용기를 보여주기를 바라서 하는 것이다. 소녀들은 노래를 하고 호루라기를 불면서 자기네 남자 친구들이 오면 짐승가죽 위에서 자지 않고 그 친구들의 넓적다리 위에서 잠을 자겠노라고 대꾸한다. 소녀들은 넓적다리에 달린 종을 요란하게 흔들면서 "죽을 기를 쓰고 노래를 한다."

그날 밤늦게 남자들은 잠깐동안 잠을 자러 가고, 소녀들은 스승의 지시대로 수술하는 집에 들어가 쐐기풀로 음핵을 찌른다.  이렇게 하면 음핵은 무감각해지고 부풀게 된다. 그들의 젖가슴도 쐐기풀을 대어 찌른다. 쐐기풀은 대단히 아픈 것이어서 소녀들은 울부짖기도 한다. 그 소리를 누르기 위해 부인들은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다음 날 이른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의식을 행한 집 둘레에 모여 약 50미터나 100미터쯤 떨어져 둥글게 둘러선다. 의식에 참여했던 부인들은 그 안에서 그들 나름대로 원형으로 서고, 가운데에다 수술을 할 때 사용할 걸상을 놓는다. 그리고 수술 집행자는 구부러진 칼을 들고 선다. 그런 다음에 부인들은 소녀들의 처녀성 여부를 조사한다. 처녀인 소녀는 수술을 받기 위해 걸상 위에 앉고 처녀가 아닌 사람은 맨땅 위에 앉는다. 수련자는 아랫도리를 벗고 두 다리를 넓게 벌린 채 하늘을 쳐다본다. 수술자는 왼손으로 음핵을 잡고 오른손으로 재빨리 그것을 잘라낸다. 소녀들은 이 단계에서는 별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이미 쐐기풀 때문에 성기가 무감각해졌기 때문이다. 혈관이 잘 묶여지지 않은 경우(거의 그런 일은 없지만)를 제외하고는 별로 많은 피를 흘리지 않는다. 그것이 끝나면 다시 종을 넓적다리에 단다. 구경꾼들은 재빨리 달려가 누가 겁쟁이였고 누가 처녀였으며, 누가 처녀가 아니었는가 하는 것을 알린다.

이 순간이 통과의례에 참여한 소녀를 가진 가정이나 친척들에게는 가장 긴장된 순간이다. 만약 어떤 소녀가 겁쟁이라든가 처녀가 아니라고 알려지면 그 부모와 형제들은 스스로 죽어버리든가 그 소녀를 살해할 만큼 심각한 치욕으로 느낀다. 다른 사람들이 말려야 겨우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육체적인 수술을 행하는 의례가 모두 끝나면 소녀들은 가죽옷을 입고 넓적다리에 달아놓은 종을 격렬한 몸짓으로 흔든다. 소년들이 몰려와 그녀들을 축하해주고 자기들이 이 의례를 위하여 소녀들에게 마련해준 장신구와 옷을 찾아간다. 소녀들은 마침내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수련자들의 부모들은 넝쿨나무(시넨데트, sinendet)를 집으로 가져다가 집 문 앞에 두어 자기네 딸이 통과의례를 거쳤음을 나타낸다. 딸이 겁쟁이였음이 드러난 경우에는 그 넝쿨나무를 조금만 가져다가 태운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그 여자아이들과 그들을 도와주는 부인들은 일정기간동안을 격리된 상태에서 보낸다. 이 기간은 일종의 교육기간으로, 이때 자기네 부족이 지니고 있는 지식과 지혜를 배우게 된다.

수술을 하고 난 처음 4일 동안은 상처가 몹시 아프다. 그래서 원하든 원치 않든 소녀들에게 우유와 고기를 먹게 한다. 그 다음에는 통과의례가 끝날 때까지 나무로 된 수저(세케티크, seketik)를 가지고 음식을 먹는다. 그 기간 동안에는 그 수련자들이 종교적으로 부정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어떤 것도 건드릴 수 없게 한다. 또 만약 어떤 사람이 여자들의 상처를 건드리게 되면 그 의례의 주례자는 그 소녀를 심하게 때린다. 남자들은 절대로 이 소녀들을 보아서는 안되고, 소녀들은 저녁에나 이른 아침에밖에 나갈 때면 머리를 가리고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고 걷는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체로 집안에서 하루를 보낸다.

의례의 주재자나 스승들은 소녀들에게 집안 살림에 관한 일, 결혼에 관한 일 등을 가르쳐 준다. 예를 들면 남편과 어떻게 동침할 것인가, 임신한 때로부터 아이가 태어나 걸음을 걷기 시작할 때까지 어떻게 성생활을 억제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매력적인 아내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아이들을 기를 것인가 등을 배운다. 또 소녀들은 "올바른" 식사습관도 배운다. 예를 들면 고기와 우유를 같이 먹으면 안되고, 어린아이들에게는 꿀과 고기를 함께 먹이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벌들이 꿀통을 비어 버리기 때문이다.

날씨를 구별하는 법, 어떻게 해야 부지런하고 근면하게 될 수 있는가 하는 법, 빌려온 물건을 돌려줄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든가, 친절하고 공손하게 하는 법 등도 배운다. 그들이 받은 교육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이들의 양육에 관한 지식이다. 난디족의 남자들은 아이들이 10세쯤 될 때까지는 전혀 아이들을 건드리지도 않고 무엇을 하라고 이르지도 않는다. 때문에 모든 면에서 아이들은 여자들이 키운다. 그것이 여자들의 의무인 것이다. 출산을 하고 나면 산모는 부정하다고 해서 약 6개월 동안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심지어 남편을 위한 식사준비도 하지 못한다.

처음으로 젖을 먹일 때면 그 직전에 산모가 흐르는 강물에 가서 자기 몸을 씻고 두 손을 쳐든 채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와 자리에 앉으면 다른 사람이 아이를 안고 와서 산모의 무릎 위에다 내려놓는다. 그러면 산모는 아이에게 젖을 빨게 한다. 이러한 제반 규칙을 엄격히 지키지 않으면 산모에게 큰 슬픔이 닥쳐올 수도 있고 심지어는 산모가 죽게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격리되어 있는 교육기간 동안에 "소녀는 서서히 여성으로서의 삶의 모습을 천을 짜듯 엮어나가게 되고,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성인의 것으로 바뀌어가게 된다. 이전의 자기를 잊어버리고 스스로의 과거를 관조할 수 있게 된다. 그녀는 삶 속에서 자기가 참으로 속해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동안 소녀는 잘 먹는다. 대부분의 경우 "영양과잉이 될 정도로 잘 먹는다." 이렇게 해서 격리 기간이 다 끝나면 "소녀들은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몸이 커지고 살이 찐다. 마음도 몸도 정신도 완전히 변화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이제는 가사를 돌 볼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고 자기들 공동체 안에서의 자기 몫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관찰해보면 이러한 통과의례의 수행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관습에 대한 기독교 선교사들의 공격은 실제에 있어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도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처녀들과 결혼을 하게 되면 비밀하게 그 의례를 거치도록 한다. 또 부모들도 비록 딸의 통과의례를 공개적으로 시행할 만한 용기는 없다 할 지라도 역시 비밀로 이 의례를 행한다. 사람들은 소녀가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으면 음핵이 길게 자라고 가지가 뻗는다고 믿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여인의 자녀들은 비정상적이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여인은 아직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그 여인이 낳은 아이는 "어린아이의 아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정황을 염두에 둔다면 통과의례를 행하는 심리적인 중요성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의례를 행하지 않는 여인은 참으로 "그 어느 누구"일 수도 없고 "불완전한 인간"이며, 아직도 "어린아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함께 사는 협동적인 실존의 분위기 속에서는, 따라서 어떤 사람이 그러한 의례에 참여하는 것을 회피한다던가 피해 달아난다던가 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러한 여인은 조만간 그 가족이나 이웃의 조롱거리가 되고, 그녀에게 어떠한 불행한 일이 닥치게 되면 제의적 성숙의 "고리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격리기간이 끝나고 통과의례를 모두 마치면 곧 소녀들은 결혼을 한다. 그들이 격리되어 있는 동안 집안에서는 남자 친구들의 집안과 결혼에 대하여 의논을 하고 혼인약속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의례에 참여하지 않은 여자는 결혼을 하지 않고 일생을 보내던가, 결혼을 하더라도 비정상적인 아이를 잉태할 거라고 하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현대의 생활이 이러한 태도나 실천에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사실이다.

비록 난디족의 여성 통과의례의 자세한 국면들이 다른 종족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의례의 근본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다. 즉 의례가 성숙을 위한 의례라는 점, 그래서 어린아이임을 단절하고 어른에로 결합되는 것을 극화한 의례라는 접은 동일하다. 성기는 생명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성기를 상처 내는 것은 생명의 분출을 열어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열어놓아야 비로소 막히지 않고 생명이 흘러나올 수 있는 것이다. 격리는 죽음의 상징이다.

그것은 마치 씨앗을 땅속에다 묻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의례를 끝내는 것은 새롭고 책임 있는 생명으로의 부활, 곧 새싹의 돋아남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자아이나 여자아이들의 통과의례를 통하여 그들이 속한 전체 종족의 협동적인 삶 자체가 다시 소생하게 된다. 그 공동체의 삶의 리듬에다 새로운 진동의 계기를 마련해주고, 그 공동체의 생명력이 되살아나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의례를 거절하는 사람이나 그 의례의 조화를 망치는 사람(처녀가 아니라든지 겁쟁이라든지 해서)은 전체 난디족의 사회에 심각한 반역을 범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여인은 공동체 전체를 멸망시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렇게 보면 부끄러움을 당한 딸이나 누이의 부모들이나 가족이 자살을 하려 한다든지, 그 소녀를 전체의 공동체적 실존을 위하여 죽여야 한다든지 하는 생각을 하게되는 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 이 의례는 깊은 차원에서부터 솟아난 심원하게 거룩한 제의이다. 이 제의에 종족 전체의 사활의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의례는 죽음과 와해의 극복 및 정복을 종교적으로 극화한 것이다.

☞ 은데벨레(Ndebele)족의 사춘기 의식(puberty rite) : 은데벨레족은 형식화된 통과의례 대신에 성숙기의 변화를 표현하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의식을 행하고 있다. 남자아이의 경우를 보면 최초로 몽정을 한 다음 날,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일찍 일어나 벌거벗고 강에 가서 몸을 씻는다. 그리고 나서 집에 돌아와 가축의 우리에 이르는 출입구 가까이의 집 밖 모퉁이에 서 있는다. 그러면 그것을 본 다른 소년들이 몰려나와 장대로 그 아이를 때려준다. 그 소년은 숲으로 달아난다. 그리고 거기에서 2, 3일간 머문다.

그 동안 다른 소년들은 그를 조심스럽게 지켜본다. 그 며칠 동안 그 소년은 낮 동안에는 결코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 다만 밤에만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 기간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서 전통적인 주의가 마련해준 약이 섞인 음식을 먹는데, 이 일은 하나의 의식으로 행해진다. 즉 주의가 장대 끝에다 옥수수로 된 음식을 놓고 이것을 그 소년의 입에다 틀어넣으면 그 아이는 그 막대를 입에 꼭 물고 그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잘 하면 주의는 그 막대를 가지고 그 아이를 세 번 혹은 네 번 내려친다. 이러한 매질은 그 아이를 단단하게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이 일이 끝나면 그 아이의 아버지와 친척들이 몰려와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그 아이에게 선물로 준다. 여자아이들의 경우에는 첫 번째 월경을 한 다음 오랫동안 찬물에서 몸을 씻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그녀의 부모들은 커다란 잔치를 베푸는데, 이 잔치가 끝나면 소녀들은 긴치마를 입기 시작한다. 긴치마를 입는 것은 이제 그 여자아이들이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며칠 동안을 수풀 속에서 보내는 것은 역시 "죽음과 부활"의 관념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유년기를 단절하는 행위는 몸을 씻는 일로 극화된다. 이 제의 적인 목욕은 동시에 비생산적인 삶의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보다 깊은 종교적 정화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또한 이 의식은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 즉 결혼, 재산의 소유,  책임지는 행위(아이들은 "단단하게"하기 위하여 매를 때리는 일을 참고할 것)등의 준비를 극화한 것이다. "단단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인간이 이제는 모든 특권과 의무를 지고 보다 넓은 사회에 완전히 협동적으로 참여하게 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며, 그러한 자질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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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사회조직을 이해하는 핵심은 사회적 집단(social groupings)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개인은 매일 매일의 생활속에서 중복되어 집단에 소속된다고 볼 수 있는데 정리하여 본다면 첫 번째가 가족이나 동족, 씨족을 포함하는 친족집단이다. 두 번째는 비 친족 집단인 연령집단, 비의결사, 통과의례, 기술조합 같은 단체들이다. 셋째는 주거하는 지역에 따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1. 친족(kinship)

1.1 친족집단의 조직과 기능

친족관계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결혼이란 당사자간의 문제가 아니라 신랑의 가족과 신부의 가족, 또는 두 친족집단간의 문제이고 이들간의 상관관계를 의미하고 있다. 이미 모든 사회들이 일정한 범위의 근친들간에는 결혼 및 성관계를 금하는 근친상간금혼제도의 관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바꾸어 말한다면 이것은 사람들이 자기의 친족집단이라고 간주하는 집단의 밖으로 혼인하는 관습, 즉 족외혼의 관습이다.

이 족외혼(exogamy)은 하나의 출계집단을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족내혼(endogamy)의 관습을 취한다면 친족집단은 생기지 않을 것이며 계보를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무질서 할 것이다.

출계를 단계로 따졌을 때 이러한 단계집단(單系集團 ; unilineal descent group)은 그 결합의 범위에 따라 동족(同族 ; lineage), 씨족(氏族 ; clan), 그리고 포족(胞族 ; phratry)으로 나눌 수 있다.
동족은 어느 일정한 지역에 모여 살고 일상생활에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는 집단을 좁은 의미에서 부르는 것이다. 이 집단은 일반적으로 같은 조상의 단계자손들로 이루어진 지역적인 집단이며 하나의 협동집단이기도 하다.

☞ 우리나라의 집성촌, 큰 의미에서의 한민족

씨족은 하나의 족보, 또는 파보를 형성할 정도의 규모로 여러지역에 흩어져 있는 동족들이 공통의 조상을 중심으로 결합된 것을 말한다. 이 씨족의 성원들간에는 주의깊게 족보상의 계보를 따져보지 않는 이상 서로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그들도 단지 같은 조상이라는 점만은 분명히 믿고 있다. 이 씨족은 보통 토템(totem)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동성동본도 이 씨족의 범위에 들어간다.

포족은 몇 개의 씨족이 결합되어 된 것이다. 포족의 구성단위인 씨족들은 분명한 실제인물로서의 공동조상을 갖지는 않지만 막연하게나마 과거에 어떤 식으로든지 친족관련이 있었다고 믿고 있어서 서로간에 혼인하지 않는 풍습이 있다. 즉 포족도 하나의 족외혼 단위로 기능하게 된다. 이렇게 출계를 단계로 따진 단계집단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기능적 이점이 있다.

첫째, 결혼을 규제하는 족외혼율은 집단의 단합과 안전을 보장한다.

단계친족집단의 성원들은 대부분 자기 집단의 사람들과 결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는 구성원들간에 일어날 수도 있는 성적인 경쟁관계를 일단 배제함으로서 집단의 응집력을 높이고 단합을 증진하는 하나의 자기방어적인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결과적으로 다른 집단과의 인척관계를 맺게 함으로서 동맹관계(marital alliance)를 넓힐 수 있다.

둘째, 경제적인 협동체로서 기능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규모가 작고 특정지역에 집중적으로 모여 살고 있는 친족원들로 구성된 출계집단에서 더욱 분명히 나타나고 있는데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상호부조하고 어떤 위기에 직면했을 때 모든 성원들이 한몸이 되어 돕는다.

셋째, 정치적인 기능체로 작용한다.

동족이나 씨족의 구성원들은 자기 친족원이 관련된 분쟁이나 법률적인 문제에서 흔히 친족원의 편을 든다. 친족집단의 우두머리나 장로는 공동소유의 토지를 누가 경작할 것인지 결정하고 집단내부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해결한다. 또한 친족집단간의 분쟁에서 대표자로서 전쟁을 수행하고 중재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로서 많은 소규모의 단순사회들에서 전쟁은 주로 단계친족집단 단위로 일어난다. 하나의 사건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친족집단들간의 문제이고 행동의 단위가 바로 친족집단이라는 점이다. 개인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우선 그가 의지하고 원조를 청하는 곳은 그가 소속한 친족집단이다.

넷째, 종교적인 기능체이다.

조상신들을 포함하여 독자적이고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가지고 이들에게 집단의 수호을 기구하기도 하고 독자적인 목적을 위해 초자연적인 세계를 통제하려는 종교적인 관습을 가지고 있다.

☞ 우리나라의 부계친족집단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제사집단

☞ 서부 아프리카의 탈렌시(Tallensi)족 : 조상제사 풍습. 출계집단에 기초한 하나의 종교.


1.2. 아프리카의 친족(kinship)

유럽과 미국의 조상들은 그들의 혈통을 단일혈통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족 양측의 남성과 여성 모두를 통해서 그들 자신의 혈통을 쌍무적으로 계승한다고 생각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프리카 사회는 약 88%가 단일혈통을 따르고 있다. 그 중 뉘르(Nuer)족과 같은 부계혈통은 74%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모계혈통은 단지 약 24%정도로 남부와 중부 아프리카의 접점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수쿠(Suku)족, 통가(Tonga)족 그리고 벰바(Bemba)족은 대표적인 모계혈통집단이다.  

단일혈통의 규칙에 의해 생겨난 집단을 보퉁 씨족(clans)이라 부르며 씨족에서 분화된 것을 가계·혈통(lineages)이라고 부른다. 씨족과 가계는 아프리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집단들이다. 씨족과 가계는 개인보다는 결국 이러한 조직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에 대해 법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법인집단(corporate groups)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개인들이 토지를 이용하고 있다고 할 지라도 그들이 씨족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에게 땅을 처분할 권리는 제한된다.

씨족의 전설과 신화는 역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그리고 씨족 조상들은 현재 살아있는 구성원들의 일상의 행동과 밀접하게 관련된 영혼의 신, 살아있는 사자(living dead)로서 존재할 것이다. 씨족 조상들은 현존하는 사람들에게 사후에도 중요한 존재로서 실존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씨족 구성원들은 위기나 필요한 의식에서 서로 돕는다. 결국 씨족은 궁극적인 관련집단이다. 그것은 개인의 정체성, 명성, 그리고 자부심이다. 한 아프리카인은 "만약 내가 매우 오랜 길을 걸어서 지쳐 더 걸을 수 없다면 나는 지쳐 쓰러질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씨족의 이름을 말한다면 나는 일어나 걸을 것이다"라고 개인에 대한 씨족의 영향력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는 그의 씨족이 그의 피곤함보다 더 중요하고 그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며 그의 씨족에 대한 기억이 그를 지탱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즉 씨족은 개인에게 물질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지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깊은 친족감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아프리카 생활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친족관계는 혈연관계와 결혼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친족관계는 한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통어하며 결혼관습과 규례도 이 친족관계가 다스린다. 또한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태도로 대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도 이 친족관계가 결정한다. 사실 이 친족감은 '부족'의 전체삶을 한데 묶어 놓는 것일 뿐만 아니라 '토템(totem)'의 체계를 통하여 동물, 식물, 생명 없는 물건들에게까지 확대되기도 한다.

씨족은 대체로 토템을 통하여 구별한다. 즉 각 씨족은 동물이나 식물, 돌이나 광물 등의 어떤 것을 그 씨족의 토템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씨족의 구성원들은 자기들의 토템은 절대로 살해하거나 먹지 않는다. 토템은 일체성, 친족, 소속감, 연대감, 공동의 친화감을 가시적으로 나타낸 상징이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와 관련된 거의 모든 개념들은 친족관계의 체계를 통해서 이해될 수도 있고 해석될 수도 있다. 친족관계는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의 행동과 사유 및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족체계는 죽은 사람과 장차 태어날 사람들을 포함하여 수직적으로 확대된다. 많은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그들 가계의 족보(the genealogies of descent)를 공부하는 것이 전통적인 교육의 일부가 되고 있다. 족보는 심원한 역사적인 소속감, 깊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이 족보를 계승 확대해야 하겠다는 거룩한 의무감을 가지도록 한다. 족보를 통하여 현재에 살고 있는 개인들은 과거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과 굳은 연계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족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그 존재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근거인 과거를 향하도록 하는 거룩한 수단이다.

족보를 통하여 과거에 살고 있는 사람과 현재에 있는 사람은 인간의 삶이 지니고 있는 무시간적인 리듬 속에서 '동시대적(同時代的)'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족보를 통하여 신화적인 '최초'의 인간, 혹은 국가적인 영웅에까지 소급해 올라감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긍지와 만족감을 지니게 하기도 한다.
친족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상호작용의 질서를 규정하고 있다.

Radcliffe-Brown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친족의 일상적인 모습중의 하나는 집단이 될 수 있는 한 사람의 다양한 친족들이 관계하는 어떤 범주의 인식이다. 권리와 의무 그리고 행동양식등 한 사람과 그의 친족과의 실제적인 사회적 관계는 친족이 속한 범주에 의해 정해진다. 친족의 명명법은 보통 이런 범주들을 만들고 이해하는 수단으로서 사용되어진다. 그러므로 친족은 부모와 아이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인식함으로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 관계는 육체적인 관계와 같은 것은 아니고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Fortes 와 Evans-Prichard가 편집한 African Political Systems이란 책에서 친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큰 사회적 정치적 단위는 친족에 의해 결합된 소규모의 단위를 포함한다. 그리하여 정치적 관계는 경계가 나누어지지 않고 친족관계와 완전히 일치한다. 정치구조와 친족조직은 완전히 융화되어 있다.

Richards, A. I. 는 중앙집권화된 정치권력을 갖지 못한 사회에서는 일종의 '지배씨족(dominant clans)'에 의해 통치된다고 지적했다.

☞ 우리에게 알려진 대부분의 전통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권력(authority)은 특별한 출계(decent line)를 따라 이어진다. 분열된 사회에서는 지배씨족(dominant clans), 귀족혈통, 또는 토지 소유자에 따라 이어진다. 이들 특권화된 출계집단은 평민 뿐만 아니라 귀족들에게 사회적 구조의 한 부분을 구성한다. 출계와 친족에 따라 그들의 삶과 정착양식이 결정된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회에서 친족제도는 개인의 권리, 의무, 주거율, 결혼, 상속과 승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친족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모체이며 사회분야는 친족 분파에 의해 만들어지고 강조되어진다.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친족은 어떤 개인에게 어떤 권리를 주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불균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권력에서도 같다고 볼 수 있다.

☞ 아샨티(Ashanti)족 : 아이들은 그 지위가 모계혈통을 따라 승계 된다. 그러나 왕족은 부계혈통을 따른다.

사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회에서 상속은 간단하다. 왜냐하면 경제환경으로 인해 축적된 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 동부 나이지리아의 야코(Yak )족 : 상속의 형태가 부계와 모계 모두를 따른다. 주거지, 경작을 위한 토지, 과일의 첫 수확과 관련된 의례행사, 그리고 중요한 임산자원은 부계를 따라 상속된다. 그러나 화폐나 가축, 그리고 출산에 관련된 의례행사는 모계에 따라 승계 된다. 즉 부동산은 아버지에서 아이로, 동산은 어머니에서 아이로 상속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친족의 강조는 호칭에 있어서도 확대발전되어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형제들에게 사용되는 용어를 다른 친척들에게 확대시켜 사용함으로서 형제를 창출하고 만드는 효과를 갖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는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용어는 우리가 "사촌"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도 사용됨을 의미한다. 물론 개인들은 영어화자들이 자신의 어머니를 통해서 관계된 사촌과 자기 아버지를 통해 관계된 사촌의 차이를 알고 있는 것처럼 진짜 형제와 아버지의 형제의 아들과의 차이점을 알고 있다.

아프리카의 전통적 관습은 그런 용어가 다른 친척들에게 확대되었기 때문에 형제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제도는 그것이 모든 개인에게 근원적인 혈족관계를 제공하기 때문에 주목할 가치가 있으며 개인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사용되는 고립용어형태와는 반대로 밀접한 협동에 의존하는 사회에서 그것은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다. 종종 친족용어는 비친족들에게 사용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관계가 매우 친근하고 깊다는 것을 나타낸다. 비록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할지라도 나이든 노인을 "할아버지"라고 호칭하고 동료를 "형제자매"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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