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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지난 8월 정부가 “한국이 2010년대에 선진국에 진입하고 2020년대에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해 2030년에는 ‘삶의 질’ 세계 10위에 오른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정치적으로도 논란을 일으켰는데 케냐도 최근 비전 2030(Vision 2030)을 발표하면서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있다. 물론 이 발표가 현 집권당이나 무와이 키바키(Mwai Kibaki) 대통령이 자신들의 장밋빛 청사진을 단순히 제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는 그 결과가 말해주겠지만 그래도 이와 같은 청사진을 통해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불러 넣고 또한 이 플랜을 통해 일관된 정책을 세울 수 있다면 그 목표달성은 크게 중요치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는 케냐의 개관과 비전 2030의 주요 내용이다.

케냐는 동부아프리카에 위치한 국가로 영국의 식민지를 받아오다 1963년 독립하였다. 케냐는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과 동시에 반시장주의 사회주의를 채택한 것과는 달리 일찍부터 시장경제를 선택하여 동부아프리카에서 가장 선진화된 경제시스템을 유지하여 왔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이후 정치적 부패 등으로 IMF나 세계은행 등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지 못해 경제상황이 좋지 못했다. 그러나 2002년 수평적인 정권교체이후 부정부패 감소와 안정적인 정책으로 다시 경제가 호전되고 있다.


케냐는 동아시아의 싱가포르, 태국 그리고 말레이시아와 같은 잘사는 국가를 만들기 위한 국가적 플랜을 지난 10월 12일 발표하였다.

케냐 정부가 발표한 전략적 목표는 다음 25년간 연평균 10%의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것으로 1인당 소득은 현재의 33,120케냐실링에서 25년이 지난 시점에는 6배가 향상된 220,680케냐실링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또한 부의 지표인 국내총생산(GDP)는 현재 1조1천2백3억 케냐실링에서 25년 후에는 12조1천6백80억 케냐실링으로 증가시킨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케냐의 국가 경제사회운영위가 이끄는 국가발전변화인 케냐 비전 2030으로 불리는 이번 플랜은 10월 26일 대통령 키바키에 의해 선포되었다.

이번 계획은 아시아 호랑이라 불리는 싱가포르, 태국 그리고 말레이시아의 경제개발의 전철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들 국가들은 30년전 케냐와 같은 발전의 단계를 걷고 있었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은 한세대가 지나자 산업화되고 현대화된 경제구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대통령이 의장으로서 국가 운영위원회를 이끌 것이며 또한 국가 경제 사회운영위원회의 구성원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이다. 이들은 비전 2030 프로젝트의 주요 의사결정 팀으로 구성되며 6주까지 매주 4차례 미팅을 할 예정이다.



비전 2030(Vision 2030)

이것의 수행은 행정부의 수장이 의장이 되는 위원회에 의해 움직이며 주요 장관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구성된다. 또한 매주 3내지 4회씩 회의를 개최한다. 필요시에는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공분야의 주요 운영자들로 구성된 핵심 전문가 팀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다. 이들도 계속적으로 회의를 개최할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위한 지원은 5-7개 각료장관들의 부서장 비전 2030에 의해 제공될 것이며 프로젝트 담당장에 의애 매일 관리될 것이다. 이미 운영위위원회는 여러 후보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하였으며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 운영한 프로그램에 경험을 지닌 일부 국제적인 컨설팅 팀들에게 평가를 의뢰하기도 하였다.

이 계획은 나이로비 그랜드 레젠시(Nairobi's Grand Regency) 호텔에서 언론 미디어 사장들과 편집담당자들에게 발표되었다.

케냐는 과거에도 경제발전과 투자유치를 위해 두 번의 장기 정책들을 기획한 적이 있으며 여러 차례 5개년 경제개발 계획들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첫 번째는 아프리카 사회주의와 케냐에 아프리카 사회주의의 적용을 위한 1965년의 Sessional Paper No 10이 있으며 두 번째는 새로운 성장을 위한 경제계획 관리(Economic Planning Management for Renewed Growth)를 위한 1986년의 Sessional Paper No 1 등이 있다.

이와 같은 계획들은 대부분 케냐의 가장 큰 문제인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의 의제들에서부터 발목을 잡혔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계획들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당시 케냐의 경제는 1964-1980 사이에 평균 6%가 넘게 성장하였으며 그리고 1980-1990년 사이에는 연평균 4.1%의 성장을 보였다. 그러나 1990-2002년 사이 1인당 소득은 단지 1.9%의 성장을 보인 반면 같은 시기 인구 증가율은 2.9%에 달해 실질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지만 2003년부터 케냐는 높은 경제성장을 다시 보이기 시작했는데 2005년에는 5.8의 GDP성장을 보였다.


케냐가 최근 비전 2030 계획을 발표한 것은 이와 같이 최근의 경제성장세를 공고화하기 위함이며 장기적으로는 게냐를 삶의 질에 있어 중위권 소득을 보이는 국가들과 같은 수준으로 높이기 위함이다.

케냐가 다른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서는 경제상황이 다소 나은 것은 분명하지만 35년전 자신들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든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그리고 태국 등과 비교해서는 비천한 경제결과물을 보이고 있다.

케냐는 이들 국가들이 성공한 것은 수많은 전략적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성실히 수행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 국가들의 전략적 비전에는 장기적, 단기적 아젠다들이 있었으며 이것들은 대부분 성실히 수행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케냐는 야심찬 비전 2030을 제시하였지만 많은 문제점들로 인해 제대로 수행될지도 의문이다. 우선 가장 큰 걸림돌은 정치문제이다. 이번에 발표한 계획이 단순히 집권당이나 대통령이 차기 정권을 노리고 설정한 선거용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미 이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데 만약 비전 2030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걸림돌을 먼저 제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크리스 키루비(Chris Kirubi)와 같은 학자는 “이 계획이 정당들을 위한 비전이 아닌 케냐 국민들을 위한 비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언론들의 역할도 아주 중요한데 언론들이 정부의 시책에 대해 비판할 것은 적절히 비판함으로써 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나이로비 주식시장의 의장인 짐나 음바루(Jimnah Mbaru)는 비전 2030을 바라보는 미디어들은 정부의 개입에 전혀 개의치 않는 보르스(Bourse)와 같은 기관이 되어야 하며 세계의 많은 국가들 중에 청렴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 국가는 성공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결국 케냐도 비전 2030의 성공이 정치적 논리로 해결한다면 결국 성공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을 많은 분석가들은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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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아프리카정상회담과 아프리카의 현실

아시아·아프리카의 연대를 표명한「반둥 회의」(1955년)가 올해로 50년을 맞이하였다. 반둥회의는 1955년 4월 18일 구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의 독립을 실현하고 있던 아시아·아프리카의 정상들이 인도네시아의 반둥에 모여 「아시아·아프리카 연대 회의」를 개최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아시아·아프리카국가들이 연대하여 자립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아시아와 아프리카 정상들이 제3세계의 단결과 비동맹운동을 촉구했던 인도네시아 반둥회의 이후 50년 만에 다시 모여 반세기 전의 정신을 확인했다. 양 대륙 89개국 대표들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4월 22, 23일 이틀 동안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를 열고 상호 정치, 경제 및 문화적 협력을 늘린다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아시아·아프리카의 전략적 협력’ 선언문을 채택했다. 또한 2년마다 외무장관 회의를, 4년마다 정상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이 처럼 양 대륙이 50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미래를 위한 선언문을 채택하는 등 50년 이전에 공유한 정신을 다시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아프리카는 고뇌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빈곤, 분쟁,HIV/AIDS 등 이대로는 아프리카가 2015년까지, 아프리카 국가들이 제시한 UN 밀레니엄 개발 목표(MDGs, Millennium Development Goals)를 달성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UN 밀레니엄 개발 목표는 2015년까지 세계의 빈곤 인구를 반감하고, 보건·교육에의 접근 확대를 제시하였지만 현재의 상황으로는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들은 밀레니엄 개발 목표가 달성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 개발을 막는 부정적 요인들
아프리카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인들이 산재하여 국가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그 부정적인 요인들을 살펴보면 먼저 에이즈 문제로, 에이즈에 의한 사망의 70% 이상이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 집중하며 남부아프리카 국가들의 평균 수명은 에이즈에 의하여 10세 이상이나 하락하고 있다.
UNAIDS의 추계에 의하면 2004년말 현재 세계의 HIV 감염자는 3,940만명(3,590 ∼ 4,430만명)으로 증가하였고 같은 해 신규 감염자는 490만명(430 ∼ 640만명), 그리고 에이즈에 의한 사망자수는 310만명(280 ∼ 350만명) 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에이즈 문제의 최근 특징으로는 경제 성장과 소득 격차가 현저한 중국이나 인도에서 에이즈 감염자의 급증하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상황에 있는 것은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이다.
2004년 말 현재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 있어서 HIV 감염자수는 2,54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세계 인구의 13%를 차지하는데 지나지 않는 이 지역에 에이즈 감염자 수는 세계 감염자의 약 2/3가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여성의 경우 3/4). 특히 아프리카지역의 성인 에이즈 감염률(7.4%)은 보합을 보이고 있지만 이것은 사태의 개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신규 감염자와 에이즈에 의하여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비슷한 결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중에서도 심각한 지역은 남부아프리카이며, 세계 인구의 약 2%가 생활하고 있는 아프리카 남부 9개국의 HIV 감염자 수는 전 세계 에이즈 환자 수의 약 30%가 집중하고 있다. 이들 국가 중 보츠와나는 2003년 성인이 감염률이 37.3%에 이르고 있고, 30 년전에 56.1세이던 평균수명이 현재는 39.7세 까지 하락하였다.
다른 남부아프리카 국가들의 상황을 보면, 스와질랜드의 에이즈 성인 감염률이 38.3%, 평균수명은 34.4세이며 레소토에서는 각각 28.9%와 35.1세, 나미비아는 24.6%, 33.1 세 등이다. 이밖에 말라위, 모잠비크, 잠비아와 위의 3개국을 포함한 아프리카 남부 6개국에서는 성인 2,600만명 중 500만명 이상이 HIV 감염자로 추측되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한 노동력의 상실은 새로운 경제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은행은 2003 년9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아프리카 에이즈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말라위의 경우 2005 년까지 숙련 노동 인구의 약 절반이 에이즈로 사망할 우려가 있다고 발표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2002년 전 세계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약2,000 억 달러가 소비되었던 반면 아프리카의 에이즈 대책 예산은 불과 10억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얼마나 아프리카 에이즈 대책이 무관심한 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 지역분쟁으로 이 역시 아프리카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에 걸쳐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일어났던 내전으로 인해 약300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또한 아프리카 경제의 후진상황과 빈부 격차의 확대에 의해 많은 빈곤층이 충분한 음식이나 물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다. 다음은 현재 아프리카의 곤경을 알려주는 주요 지표들이다.
․ 아프리카 평균 수명은 58세이며 18개국은 평균 수명이 50세 이하 그리고 시에라리온의 경우 평균수명이 37세이다.
․ 아프리카 전체 인구 중 절반이 하루 1달러 이하로 생활을 하고 있다.
․ 전세계 34개 최빈국 중 아프리카 29개국이 최빈곤 국으로 지정되어 있다.
․ 18개국의 여성 중 절반이상이 문맹이다.
․ 아프리카 28개국에서 5세이하 어린이들 중 1천명당 140명이 사망하고 있다.
․ 아프리카 전체인구의 58%는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왜 아프리카는 세계의 불행한 대륙으로 남아 있는 것인가. 가장 우선시되는 문제는 지난 50년간 아프리카의 대부분 국가에서는 선정(good Governance)결여 등 정치적 불안정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특히 냉전시기를 중심으로 구미 선진국은 아프리카의 광물·농산 자원이나 이권의 확보, 지정학적인 전략적 관점에만 우선시하고, 부패나 인권 침해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독재자 등에 대한 군사 원조를 포함한 정치적 원조를 계속했다. 그 결과 아프리카에는 막대한 금액의 원조가 투하됐음에도 불구하고 민생의 향상이나 경제 성장에는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프리카의 위기 극복 노력들
현재 아프리카 사람들은 「생존」자체가 과제로 안고 살아 나가고 있다. 그러나 생존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의지가 점점 강화되고 있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에이즈에 관해서도 21세기 들어 아프리카인들 스스로 예방이나 교육 그리고 각국 정부들의 보건시설 강화 등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경제면에서도 아프리카인들은 생존을 위해 중소·영세 기업 등의 경제 활동이 현저하게 성장하고 있다. 한편,21 세기에 들어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에 있어 분쟁이 점차 감소하여 정치적 불안정도 개선되고 있다. 아프리카 연합(AU)의 결성이나 아프리카 자신의 상호감시 체계의 실시 등 아프리카 스스로의 이니셔티브에 의한 분쟁해결이나 관리 강화의 프로세스가 진전되고 있다.AU는 2002년 7월 출범하였다. AU는 아프리카의 숙원인 '분쟁 종식'과 '빈곤 추방'이라는 두 마리 토끼 사냥을 목표로 하고 있다. AU의 조직으로는 각국 수반으로 구성되는 아프리카 의회를 비롯해 15개 회원국으로 구성되는 평화안보위원회, 사법재판소 등이 있고 재정 관련조직으로 아프리카 은행(The African Bank), 아프리카 통화기금(The African Monetary Fund)과 아프리카 투자은행(African Investment Bank) 등이 있다. 특히 유엔 안보리를 본떠 15개국으로 만든 평화 안보리는 대륙의 분쟁을 해결하고 조정하는 임무를 맡게 된 AU의 핵심부분이다.
또한 21세기에 들어 아프리카는 분쟁, 교육, 보건 등에 관하여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고, 의욕적인 출발을 하려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아프리카의 노력은 단순히 아프리카만의 노력에 의해서 만으로는 이룩할 수 없으며 지금 이야 말로, G8 등 선진국들이 본격적인 아프리카 지원에 나서야 할 때 이다.그러나 불행히도 현재 선진국들의 아프리카에 대한 개발원조자금(ODA)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실정으로 아프리카의 주요 ODA 공여국인 일본의 경우에도 전체 총 ODA의 삭감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원조가 국가에 너무 의존하고 있어 원조의 방법에 대해서도 정부만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나 기업 등 민간 부문에서 주체적으로 참가여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 당연하다. 일본의 경우 ‘반둥 회의’ 50주년에 즈음하여, 일본 정부의 아프리카 원조에 관하여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였다. 일본의 아프리카 원조는 일본 ODA 전체의 불과 8.8%에 지나지 않으며 G7 국가들 중에서 6위를 차지하고 있다.
첫째, 국제 공약을 지키고,ODA를 GNI(국민총소득)의 0.7%로 증액하는 것.
둘째,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 ODA 배분을 전체 35%까지 끌어올리는 것.
셋째, 대아프리카 원조의 목적을 밀레니엄 개발 목표의 달성과 빈곤 삭감과 격차 시정에 두고,「아프리카 일본 연대 기금」을 설립하여 대 아프리카 원조를 동 기금으로 일원화되는 것.
넷째, 동 기금의 운영에는 시민사회가 참가하며 또한 기금의 40%는 시민사회의 집행에 맡기는 것으로 한다.
다섯째, 위의 내용들을 2010년까지 실현한 것 등이다.
이 처럼 일본을 비롯하여 선진국들은 GNI의 0.7% ODA 제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은 일부 국가들에 한정되어 있어 선진국들의 자발적인 원조확대가 필수적이다.
또한 원조와 더불어 아프리카의 빈곤을 감소시키기 위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아프리카 경제의 회생을 막고 있는 외채의 경감이다. 세계은행과 IMF 정책결정자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빈곤과의 전쟁을 위해서는 보다 나은 정부의 구성과 무역을 보다 용이하게 접근하기 위해서 외채를 줄이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외채 유지는 만약 외채문제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제기된다면 단지 그것을 유지만 시킬 뿐이며 개선은 할 수 없다"라고 이 두 국제기구의 한 관계자가 말했다.
2년 전 IMF와 세계은행에 의해 발표된 부채과도 빈곤국가(HIPC) 22개국들은 현재 총 340억달러의 외채경감의 혜택을 보았다. 다른 쌍무협정을 통한 외채 경감까지를 포함하면 그 액수는 530억달러에 달한다.
13개 국가들은 현재 외채 경감에 대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 부채과도 빈곤 국가들에 대한 부채경감 프로그램은 비정부기구들에 의해 신랄하게 비판받고 있는데 이는 그 경감규모가 너무나 적고 또한 너무나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외채경감 비정부기구는 4월 초 IMF와 세계은행이 세계의 가장 빈곤한 국가들의 모든 부채를 경감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한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IMF와 세계은행 정책결정자들은 지난 4월 말 외채경감은 신중한 차입과 개인기업 부문, 교육 그리고 보건을 지원하는 정책들 펼치는 경제 관리에 개선을 보이고 있는 국가들에게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아프리카 장래는 밝다
최근 아프리카의 차드, 적도기니, 나이지리아, 가봉 등 일부 산유국들의 경우 고유가로 인해 고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 들어 「잊혀진 세계」, 아프리카의 석유가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9 월11일 미국 동시 다발 테러와 이에 맞춰 미국에 의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공은 세계 최대의 석유 수급지인 중동 불안을 초래하였고,EU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에너지 전략의 재평가를 강요한 에너지 안전보장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확인 석유 매장량 800억 배럴로 아프리카는 향후 5년내에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할 예정이다.
미국의 경우 파월 전 국무장관이 이라크전쟁 시작 전 2002년 9월에 앙골라, 가봉을 방문하였고,2003 년 7월에는 부시 대통령이 아프리카5개국(세네갈, 남아프리카공화국, 보츠와나, 우간다, 나이지리아)을 방문하여 석유와 관련하여 아프리카 국가들의 협조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현재 세계에서 차지하는 아프리카의 원유 생산의 비율은 10% 이상에 이르고 있다. 아프리카 최대의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의 원유 생산은 약 240 만 배럴/ 일(2004 년)을 기록하고 있으며 확인 매장량도 343억 배럴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유 메이저 회사들은 나이지리아의 개발되지 않은 지하 천연 자원의 이권 획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중에서 세계 최대 석유 회사인 엑슨 모빌(ExxonMobil)은 아프리카 원유 증산 계획을 내세우고 있고,2004년 발표된 연차 보고에서는 아프리카에서의 생산량이 1위를(23.5%) 차지하였다. 또한 엑슨 모빌 그룹은 2005년 1월 18일 나이지리아 국영 석유 회사(NNPC : Nigeria National Petroleum Company)와 제휴하여 LNG 플랜트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2010년부터 조업 시작을 기대하고 있다. 다음으로 주목받고 있는 메이저 석유 회사로는 엑슨 모빌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셰브론 텍사코(Chevron Texaco)를 들 수 있다. 이 회사는 향후 5년간 총액 200억 달러의 아프리카 투자 계획을 발표하였는데 지난 1월 13일에는 영국 가스 회사(BG)와 제휴하여 나이지리아 LNG 플랜트 건설(2009년 조업 시작 예정)을 발표하였다. 이 밖에 영국의 BP 등이 나이지리아에서의 탄화수소 부문의 개발에 참가하고 있다.
이 처럼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우 일부 산유국들을 포함하여 대륙전체의 경제성장률이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 보다 훨씬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4에 이어 2005년에도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적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으며 특히 2005년의 경제성장 전망을 보다 좋게 보고 있다.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 배포된 전망에서 IMF는 아프리카의 국내총생산이 2003년 3.7%의 성장에서 2004년에는 4.6%의 성장을 그리고 2005년에는 5.8%의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망은 그 어느 때보다 좋은 것으로 거시 경제적인 안정면에서도 현재 가장 좋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고가 상품에 대한 강한 수요와 외채 부담에 대한 완화 그리고 산업시장에 대한 접근의 개선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특히 원유수출 국가들은 지금까지 가장 큰 순 이익의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반면 국제 원유가격의 고가로 인해 원유를 수입하고 있는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IMF는 원유를 수입하고 있는 아프리카 정책입안자들은 상품가격들에 대해 유연성을 두어 원유가격이 고가일 때 ‘예방적 저축’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IMF는 아프리카 정부들의 경제에 대한 간여를 줄이고 기간산업과 민간투자를 활성화해야 하며 뿌리 깊게 남아있는 제도적 개선도 이루어져 향후 보다 나은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충고하였다.
반둥회의 50주년을 맞아 아시아․아프리카 정상들이 인도네시아에서 다시 만나 초기의 협력관계를 모색하고 있지만 50년이 지난 현재 두 대륙의 경제적, 정치적 위상면에서는 많은 격차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일본, 중국 같은 국가들은 매년 아프리카국가들과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있으며 동등한 위치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수혜를 베푸는 입장에서 대하고 있다. 이것은 원조 공여를 받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며 두 대륙이 동등한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치적, 경제적 발전이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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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파월 미 국무장관과 유엔 사무총장이 다르푸를 방문했지만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상태입니다. 국제 사회는 지금 다르푸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국제사회는 무엇보다도 수단정부에 대해 잔자위드를 무장해제시키고 인종청소 등 인권남용에 대한 범죄행위를 조사할 것을 요구해야한다. 특히 전쟁의 수단으로서 강간과 살인등을 일삼은 전쟁범죄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 수단정부가 약속한 위와 같은 일련의 조치들이 정확하게 이루어지게 하려면 국제사회의 감시가 필수적이다.

지금 현재 약 100만명이 넘는 다르푸 사람들이 보건과 위생, 영양, 주거지등은 물론 계속되는 공격으로부터 보호되기 위해 긴급하고 충분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수단정부는 한해 약 10억 달러에 이르는 남부에서 나는 원유수입으로 인해 중국, 러시아, 벨로루시등으로부터 군사장비를 공급받을 수 있고 내부적으로는 2002년 10월 남부지역의 휴전으로 인해 다르푸 지역에 대한 공격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 또한 국제사회의 공조로 무기금수조치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미국이 다르푸 지역의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에 수단에 대한 제제조치를 추진중인데 수단은 제 2 의 이라크 사태를 언급하며 반발하고 있다. 현재는 수단정부의 노력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UN은 남부 지역의 휴전과 함께 휴전감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보리는 이러한 감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6500명의 군대를 파병하려고 계획하고 있지만 이 병력은 다르푸 지역에만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수단 전 지역에 배치되고 기간도 짧기 때문에 그 효과가 의심되고 있다.

4월 8일 휴전협정에 따라 수단 정부와 두개의 반군집단은 아프리카 연합(Africa Union)이 휴전을 위해 휴전 위원회를 설치하는데 동의했다. 이에 따라 AU는 약 120명의 휴전감시요원과 270명의 무장 보호병력을 구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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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르푸지역에서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정부와 두 반군집단은 2004년 4월 8일에 휴전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수단 공군에 의한 폭격과 진자위드의 계속된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진자위드는 정부가 통제하는 지역으로 피난한 시민들에게 테러를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단정부는 제일먼저 진자위드를 무장해제시키고 인권남용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처벌하고 삶의 주거지를 빼앗기거나 떠나온 사람들에게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장기적 안목에서 본다면 남아공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처럼 인종적 화해, 보상, 그리고 정의가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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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르푸르 분쟁의 성격과 국제사회의 무관심의 원인은?

다르푸 지역의 분쟁은 정확히 종교적 분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거의 모든 다르푸 인들이 무슬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군과 진자위드는 모스크와 코란을 신성모독하며 모스크 안에 피난해 있는 사람과 지도자들을 살해하고 있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정부군이 공격하기 전까지 수단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기껏해야 서부지역사람들 또는 다르푸 사람들 정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현재 발생하고 있는 분쟁으로 인해 민족적, 인종적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즉 국가의식은 더욱 희박해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분명히 종족적, 인종적 분쟁으로 정의할 수 있다.

다르푸 지역에 대한 기자들의 접근을 수단정부에서 막고 있으며 차드지역으로 난민이 들어가는 것도 차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사회가 원조를 위해 이 지역에 들어가는데 약 4개월이 걸리고 있다. 도로상황도 엉망이고 철도도 다르푸 남부의 냘라(Nyala)지역으로만 진입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는 수송로가 좋지 않은 것도 문제이지만 무장세력이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단정부는 21년간의 남부의 내전에서도 국제사회의 구호노력을 방해하고 좌절시켰다. 수단정부의 이 같은 방해와 함께 남부지방에 첫 번째 기근이 들었던 1988년에는 약 250,000명이 생명을 잃었으며 두 번째 기근이 들었을때는 약 100,000명이 사망하였다. 수단정부는 다르푸지역에서 비슷하게 방해공작을 펼치고 있다.

수단정부는 다르푸 사태가 정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협상보다는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다르푸 출신 국회의원들에게 실제적인 권한을 주지 않고 일당제 국가처럼 국가의회당(National Congress Party)의 주도하에 비둘기파인 고위공무원을 매파인 군 인사로 대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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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들은 왜 이렇게 집단 강간과 살해를 자행 하는지요?

문제는 수단정부군과 잔자위드가 반군에 대한 공격보다는 시민들에 대하여 무차별적인 공격과 파괴를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증거에 따르면 수단군과 진자위드 민병대의 공격은 민간인이 거주하는 마을을 체계적으로 파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수단공군의 공군력이 동원되고 있는데 이는 삶의 주거지를 완벽하게 파괴함으로서 거주지를 포기하고 떠나게 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잔자위드는 아프리카계 주민들에 대한 공격시 모든 것을 초토화시킴으로서 그들을 난민화시켜 쫒아내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살해, 강간, 약탈은 물론 구호품에 대한 약탈도 서슴지 않고 있다.

정부군은 언제나 먼저 도착하고 제일 나중에 철수함으로서 수단정부군과 잔자위드는 동일한 목적을 가진 집단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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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르푸 지역에서 이렇게 조직적인 강간과 살해를 하는 아랍계 민병대는 어떤 단체입니까?

수단정부군중 많은 사람들이 다르푸지역 출신으로 수단정부군이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보다는 일종의 대리전을 치루게 함으로서 인권문제에 대한 국내외적 비난을 피하고 다르푸의 아프리카계 민족을 제압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수단정부는 다르푸와 차드의 가난한 아랍계 유목민들을 대상으로 잔자위드라는 무장단체를 만들게 하고 무장, 훈련, 장비등 모든 지원을 하고 있으며 이들이 또한 이들이 저지르는 모든 범죄행위에 대해 죄를 묻지 않는 일종의 면책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 단체의 지도자들은 과거에 농경마을을 공격했던 범죄경력을 가지고 있다. 잔자위드라는 뜻은 다르푸인들 사이에 ‘산적(bandits)' 또는 '노상강도(highwaymen)'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 약 20,000명의 병력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공격시 수단 공군의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복장도 수단정부군과 비슷한 녹색의 카키색 복장이고 수단정부에서 허가한 위성전화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수단군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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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르푸 지역에서 아랍계 민병대와 수단 반군의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003년 아프리카 부족들이 중심이 된 두 개의 반군집단 - 수단 인민해방군(Sudan Liberation Army/Movement : SLA/SLM), 정의평등운동(Justice and Equality Movement : JEM) - 이 다르푸 지역의 경제적 소외를 종식시키고 아랍인들에게 치우쳐 있는 국가권력을 공평하게 분배할 것을 주장하며 반군활동을 벌이게 되었다. 또한 다르푸 지역은 그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북쪽의 유목민 집단들이 가뭄과 사막화로 인해  아프리카계 주민이 살고 있는 다르푸 중심지역을 자주 침범하는데 대해 정부에 대책을 호소했으나 정부의 무대응으로 일관한데 대한 반발도 작용하였다.  

반면에 아랍계 주민들은 다르푸 지역에서 아프리카계 주민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소외된데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1989년 바시르 장군이 누메이리 정권에 대한 구데타 이후 군사독재를 강화하고 이슬람원리주의에 입각한 이슬람법의 적용을 강화하였으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수단정부가 의도적으로 아랍 주민들에게 정치적 경제적 특권을 주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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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단의 남쪽인 다르푸 지역 어떤 곳입니까?

다르푸(Darfur)지역은 수단의 서쪽, 정확히 말하자면 차드(Chad)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이다. 원주민들은 아프리카계와 아랍계가 섞여 있으며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아프리카계인 - 퍼르(Fur)족, 마살리트(Masalit)족, 그리고 자그하와(Zaghawa)족 -이 다수족이며 인구는 약 600만정도이다. 2003년 초부터 수단정부군이 지원하는 아랍계 민병대인 잔자위드(Janjaweed)와 두 개의 아프리카계 반군들 사이에서 종족분규가 발생하고 있는 지역으로 무차별적인 인종청소와 인권남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지역의 분쟁으로 인해 약 3만명이 숨졌으며 약 20만명이 이웃 차드에 피난해 있고 약 1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올해 말에는 약 220만명이 국제사회의 구호를 필요로하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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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구기 와 시옹고/제임스 응구기(Ngugi Wa Thiong'o/James Ngugi : 1938-?)

케냐의 작가. 나이로비(Nairobi) 근처의 카미리투(Kamiriithu)지방의 일부다처제 기쿠유(Gikuyu)족 농부가족에서 태어난 응구기는 케냐에 있는 최고의 식민 중등학교인 얼라이언스 고등학교(Alliance High School)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후에 우간다(Uganda)의 캄팔라(Kampala)에 있는 마케레레 대학(Makerere University College)에서 입학하였고 1964년 학부과정을 마친다. 이후에는 영국에 있는 리즈 대학(Leeds University)에서 수학하였고 이 때부터 그의 정치적인 견해는 바뀐다.  

응구기는 아프리카인으로는 처음으로 1967년에 영국 나이로비 대학의 영어학부의 교원으로 임명된다. 그는 이때 케냐의 이중적인 문화적 삶에 대하여 경험한다. 영어 로 된 문학작품을 처음으로 발행한 케냐인으로서 그리고 다른 아프리카 대학들에게 영향을 끼친 아프리카 중심중의적(Aforcentric) 교과과정의 제안자로서 그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1978년 억압적인 정부정책에 항의하다가 1년 동안 구금을 당하기도 한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오직 기쿠유어로만 쓸 것을 결심한다.  

출감 후 나이로비 대학의 복직을 거절한 응구기는 오직 정부의 새로워진 억압정책에 대항하기 위하여 극장에서 그는 활동을 계속한다. 1982년에 체포의 위협을 받은 그는 영국과 미국으로 갔고 예일 대학(Yale University)과 뉴욕 대학(New York University)대학에서 가르쳤다. 응구기는 신식민주의에 대한 단호한 비판과 식민지의 언어보다는 아프리카어로 집필하는 것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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