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의 땅 남아공화국이 백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488년 바돌로뮤 디아즈(Bartholomew Diaz) 휘하의 포르투갈 탐험대가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인도양으로 나가는 항로를 발견하면서부터이다. 9년 후인 1497년에 유명한 포르투갈인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케이프를 바로 돌아 현재의 나탈(Natal, 그가 이곳에 도착한 것은 성탄절이었고 다 가마가 이름지었다)까지 이르렀고 동아프리카의 몸바사(Mombasa)와 말린디(Malindi)를 거쳐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면서 남아공의 케이프 타운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된다.
이 지역에 백인들이 본격적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The Dutch East India Company)가 인도 항로의 중간 정박 기지(기항지 ; revictualling station) 건설을 목적으로, 얀 판 리비어크(Jan van Riebeek)가 이끄는 3척의 배와, 130명의 남녀로 구성된 탐험대가 1652년 6월 4일 테이블만에 도착하면서부터이다. 이들은 목축과 영농을 하며 지금의 케이프 타운(Cape Town) 근처에 백인 사회를 건설했다.
백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 지역의 해안 지대에는 주로 두 부족의 흑인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코이코이(Khoikhoi) 또는 호텐토트(Hotentot)라 불린 부족은 주로 목축을 영위하고 있었으며, 부쉬맨(Bushman)으로 불리는 산(san)족은 수렵과 채집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북쪽의 내륙지방에는 반투(Bantu)어를 사용하는 줄루(Zulu)족, 코사(Xhosa)족 등이 대규모 집단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초기에 백인들과 흑인들은 대체로 우호적인 관계에서 물물교환을 했으나 차츰 목축지를 놓고 대립하는 관계로 변해 갔다. 특히 보어(Boer)인들로 불린 네덜란드계 백인사회가 점점 더 내륙으로 확장되어 감에 따라 이주민과 원주민사이의 대립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남아공의 백인사회는 네덜란드 본토에서 보내는 식민 이주자들과 종교적, 경제적 목적으로 이주해 온 프랑스계, 독일계 등의 이주민들로 꾸준히 확대되었으며, 18세기말에는 영국계 선교사들도 들어와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조달하기 위해 인근 서부 아프리카와 동인도 등지에서 노예들을 수입하는 한편 자신들이 정복한 흑인들을 노예로 삼았다.
영국의 지배에 반발하여 1835년에 시작되어 1848년에 일단락된 보어인 들의 대이주(Great Trek)는 수차례에 걸쳐 계속되었다. 이들은 이주자(Voortrekkers)로 불리어졌고 우마차를 타고 소위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이주를 시작했다. 이들은 철저한 켈빈교도였으며 영국의 압제를 벗어나 그들의 권리와 자유를 얻고자 하였다. 영국의 평등정책과 선교사들의 활동 그리고 영국인들의 공식적인 행정정책(예를 들어 1822년 영어의 공식화)들은 대이주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들은 새로운 미개척지에 사는 선주민들은 열등한 인종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생각은 아프리카너들의 인종차별정책(Apartheid)의 기반을 이루게 되었다.
남아공 백인들의 음식문화는 이러한 복잡한 역사적 과정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유럽의 음식문화라고 설명할 수도 없고 - 물론 가장 영향을 받은 것은 유럽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렇다고 흑인들의 음식이라고는 더더욱 말하기 곤란하다. 아마 남아공의 백인들이 아프리카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이들의 음식도 또 하나의 독특한 아프리카 음식으로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 남아공에서 전통적인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몇 가지 음식을 소개한다.
먼저 부라이(braai)야 말로 일종의 바베큐라고 할 수 있는데 아프리카너 백인들의 전통적인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가한 주말 오후에 공원에서 준비된 숯을 피우고 와인이나 맥주를 한잔하면서 한가로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부라이는 백인들의 문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름다운 정원이나 야외에서 숯불을 피우고 맥주와 와인을 마시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정원이나
다른 지역의 바비큐와 다른 점은 부라이 소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금은 집에서 각자 특이하게 취향에 따라 만들 수 도 있으며 슈퍼나 가게에서 파는 것을 구할 수 있다. 고기는 양고기를 최고로 치며 소고기, 닭고기 그리고 돼지고기도 이용한다. 요리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불의 온도를 맞추는 것이다. 숯불이 하얀 재가 되기 시작했을 때가 제일 좋은 때이며 손등을 대어 좀 뜨겁다고 느낄 수 있는 위치에서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부르보르스(Boerewors)는 우리 나라의 순대와 같은 것으로 주 재료는 간 고기와 치즈 등이 주원료이다. 숯불에 구워서 빵 사이에 넣고 케찹이나 겨자소스를 넣어 간편하게 먹을 수 있으며 간식으로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쇼핑몰에서 아주 다양하게 만든 부르보르스를 살 수 있으며 부라이 할 때 언제나 빠지지 않는 전통 음식이다.
빌통(Biltong)은 과자나 스낵과 같이 남아공 사람들이 애용하는 것이다. 도시마다 쇼핑몰마다 빌통을 팔고 있으며 빌통만을 파는 전문점도 많이 있다. 과거에는 야생 고기(스프링 복, 쿠두 등등)를 사용했다. 우리나라의 육포(쇠고기)와 비슷하다. 요리되어 있는 연골이 붙어있거나 지방이 너무 많은 것은 피해야 한다. 만드는 방법이 쉬운편은 아니다. 고기를 가능한 한 얇게 썰고 마리네이드와 섞는다. (우스터 소스 한 컵과 간장 한 병이 든다) 여기에 썬 고기를 넣고 가 끔 뒤집어 주면서 약 4시간 가량 냉장고에 보관한다. 만일 상점이나 텔레비젼에서 보던 건조기를 가지고 있다면 더 좋은 요리를 할 수가 있다. 건조기에 고기를 쌓아 올리고 밤동안 놓아두는데, 맨 아래의 것이 위의 것보다 빨리 건조되기 때문에 선반을 바꿔주어야 한다. 너무 건조되거나 질기게 되지 않도록 잘 건조하고 먹기 쉽도록 봉지에 넣어둔다. 이것은 맥주나 와인과 함께, 스낵이나 길거리 음식처럼 먹는다면 아주 훌륭하다. 오븐에 건조해도 되고, 선반에 고기를 걸어 아래로 수분을 떨어뜨리는 방법도 있다. 오븐에서 할 때엔 가장 낮은 온도로 맞추고 건조한다. 몇 시간마다 한번씩 확인해주고 변질되지 않는 상품이 되도록 한다.
뽀이끼꼬스(Potjiekos)는 우리나라의 갈비찜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기다리는 동안 마실 와인도 많이 필요하다. 이것은 어떤 재료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므로 거의 같은 형태를 두 번 보기는 힘들다. 요리도구로는 다리가 3개 달린 항아리처럼 된 큰 철 냄비(깊은 것; 우리의 무쇠솥 같이 검다)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며 꼭 맞는 뚜껑이 있어야 한다. 재료로는 약간의 기름, 쇠고기, 양고기, 닭고기, 생선중 하나., 두껍게 썬 야채(호박, 감자, dia, 토마토, 콩 등등), 와인 (마실 것), 허브, 양념(소금, 후추, 코리엔더, 튜메릭, 커리 등등) 등이 필요하다. 매우 낮은 온도에서 고기 (닭이나 생선) 덩어리를 깊은 냄비에 담는다. 냄비에 고기를 채운다. 층층마다 야채와 감자를 넣는데 그 위에는 양념을 해주고 와인을 붓는다. 젓지 말고 낮은 온도의 불에서 4-6시간 조리하는데 그 동안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라..냄비에 와인을 조금 붓고 기다렸다가 밥 위에 얹어 낸다. 이것을 천천히 요리한다면 인생이 즐겁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음경의 표피 전부 또는 일부를 자르는 행위로 이 의식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할례가 하나의 의식으로 여러 민족에 분포된 점과 금속 칼보다는 돌칼을 널리 사용한 점은 이것이 매우 오래 전부터 있었음을 암시한다.
할례(circumcision)를 전통의식으로 행하는 곳에서는 사춘기 전이나 사춘기 때 행하며, 이슬람교도들 중 어떤 이들은 결혼 직전에 행하고, 어떤 이들은 종교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나 출생 뒤 곧바로 행한다. 유대인들이 남자아이를 낳은 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의 일부 내용에 따른 것이다. 이처럼 유대교로 개종하는 모든 남자는 의무적으로 할례를 받도록 되어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는 교회에 들어온 자에게 이러한 '모세의 법'을 의무조항으로 하지 말 것을 정했다(사도 15). 나이에 상관없이 행해졌으며, 일반적인 경우 할례를 받는 사람이 그가 속한 단체에 정식으로 가입함을 뜻하거나 그가 어떤 지위를 얻었음을 가리켰다. 따라서 할례를 통해 사회적 지위․권리․신분 등이 확정되었다. 세계 도처에 있는 여러 전통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유대인, 이슬람교도, 일부 그리스도교도들 가운데서도 이 행위는 심오한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의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생리학적인 면에서 볼 때 음경의 표피를 제거하여 음경귀두를 드러내는 이 행위는 피지라고 불리는 치즈 모양의 악취를 풍기는 분비물이 쌓이는 것을 방지한다. 피지는 불쾌감을 주며, 전염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다소 줄어드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영어권 국가들, 특히 미국에서는 신생아들에게 의료상의 할례를 행하는 것(포경수술)이 관례로 되어 있다. 점점 많은 수의 외과의사들이 몇 가지 위생상의 이유로 포경수술을 관례적으로 행하는 일을 거절하고 있지만, 몇몇 부모들은 그 아이의 아버지가 할례를 받았다는 이유와 또는 이 의식이 그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아이들이 할례를 받아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음경암의 발생률이 할례를 받은 남자들에게서는 적은 것이 사실이지만, 위생의식이 높은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에게서도 그 발생률은 적게 나타난다.
성기의 표피를 잘라내는 것은 유년기로부터의 단절을 상징하고 극화하는 것이다. 이 행위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탯줄을 끊는 행위와 일치하는 현상이다. 할례 이전의 성기는 아이가 무지의 상태, 무활동의 상태, 잠재적인 불능의 상태(무성(無性)의 상태)에 종속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그러한 예속의 관계가 단절되면 그 젊은이는 무지와 무활동의 상태로부터 풀려나 자유스럽게 된다. 그는 다른 상태, 곧 지식과 활동과 출산의 단계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는 한 그는 결혼을 할 수도 없다. 아이를 낳거나 심지어 임신을 할 수도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피를 땅에다 흘리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땅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고, 그래서 땅에다 술을 부음으로서 비로소 그들에게 도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살아있는 사자와 아이와의 신비적인 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때 흘리는 피는 새로운 탄생을 위한 피인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을 주고 그것을 견디어 내도록 격려하는 것은 이후에 살아갈 동안 부닥칠 곤란과 고통을 감내하기 위한 훈련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은 일반적으로 무엇보다도 육체적인 고통이나 아픔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덕이라고 생각한다.
마사이(Maasai)족은 젊은이들이 12살이나 16살 될 때까지 4년 혹은 5년에 한 번씩 몇 차례 할례를 행한다. 그리고 함께 할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들끼리 모여 일생 동안 지속되는 동년배집단을 구성하고 새로운 특별한 이름을 갖는다. 이 의례의 준비로 우선 모든 입후보자들은 흰색 진흙을 온몸에 바르고,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은 채 함께 모인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두 달 동안 여러 지방을 옮겨다닌다. 의례가 행해지는 전날이 되면 소년들은 찬물에다 온몸을 씻는다. 그것이 끝나면 할례를 행하는데, 그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황소가죽에 담아서 각 소년의 머리 위에다 붓는다. 그 다음에는 나흘 동안 이들을 격리해두었다가 나흘이 끝나면 여자 옷을 입고, 흰 진흙을 얼굴에 바르고, 타조 깃털로 손을 장식한다. 한두 주일 후에 할례 받은 성기가 치유가 되면 그들은 머리를 삭발한다. 새머리가 자라면서 그들은 비로소 전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동부 아프리카의 키쿠유족의 경우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는 아무리 나이가 많이 들었다 할지라도 결코 성인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루오족의 경우에는 전통적으로 할례를 받지 않고 있다. 따라서 키쿠유족의 세계관과 의식에 의하면 루오족 부족민들은 한낱 아이들의 세계 속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남자들에게 행해지는 할례는 현대 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포경수술에 해당되기 때문에 방법상의 문제 - 예를 들어 무자격 의료인에 의한 시술이나 소독되지 않은 도구의 사용 같은- 만 종종 거론될 뿐 인권유린의 차원에서 부각된 적은 없다.
남부아프리카의 코사(Xhosa)족의 경우 현대에 들어와서 할레시술(ukoluka)로 인해 성기가 부패되고 절단되는 상황도 발생되고 있으며 심지어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동부 케이프(Eastern Cape)의 한 전통의사(ikankatha;할레 시술자)는 한 건의 시술당 약 R50(우리돈 6000원정도)와 한병의 브랜디를 받지만 이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전통의 일부로서 생각한다. 또한 할레에 대한 기술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도제제도에 의해 전수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숙련된 전통의가 사라져감에 따라 경험이 부족한 소위 “야메 의사(bush doctors)"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사고를 유발하고 있다.
할례는 현대에 들어와서도 중요시되고 있으며 전통을 유지해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통과의례는 젊은이들이 성숙한 인간으로서 또 책임 있는 존재로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공동체의 특권과 의무를 갖게 되며 교육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들은 새로운 권리를 전수 받고 사회는 그들이 새로운 의무를 수행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성생활, 결혼, 자녀의 출산, 가족에 대한 책임 등에 대한 일들을 준비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기간동안 고통을 견디는 것을 배우고 서로 함께 사는 법을 배우며 순종하는 것을 배우고 남녀관계의 비밀과 신비를 배운다.
통과의례에는 시련을 이겨나가는 것이 필수적인데, 새로운 영역으로의 편입을 의미하기 위해 때때로 문이 사용된다. 대개 몸의 일부를 변화시키거나(예를 들면 할례, 이 뽑기, 문신이나 상처내기, 머리장식 등) 특별한 의복과 장신구를 착용함으로써 새로운 지위를 나타낸다. 통과의례를 연구할 때는 주로 그 사회학적 기능을 고려해왔다. 사회체계는 순조로운 기능을 위해 일정한 정도의 균형을 요구한다. 개인 또는 집단의 변화는 이러한 균형을 위협하게 된다. 그러므로 통과의례의 주된 사회학적 기능은 이러한 변화 이후에 새로운 사회적 균형을 이루고 사회적 질서를 회복하여 조화된 부분들의 체계로서의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다. 개인이 새로운 질서로 편입되는 과정을 극화한 통과의례는 의례를 행한 개인에게 새로운 역할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통과의례는 또한 공동체가 그 구성원의 지지를 실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회학적 기능 못지않게 중요한 통과의례의 심리학적 기능은 학문적인 관심을 덜 받아왔다. 일부 해석에 의하면, 이러한 의례는 인생의 중요한 단계들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하며, 개인이 세계의 어떤 통제 불가능한 측면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즉 통과의례는 개인의 경험을 위해 예측 가능한 공동상황을 제공함으로써 변화에 수반되는 불가피한 고통을 완화하는 심리치료적인 기능을 한다.
피상적으로 관찰해보면 이러한 통과의례의 수행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의식은 아직까지도 비밀리에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도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처녀들과 결혼을 하게 되면 비밀하게 그 의례를 거치도록 한다. 또 부모들도 비록 딸의 통과의례를 공개적으로 시행할 만한 용기는 없다 할지라도 역시 비밀로 이 의례를 행한다. 사람들은 소녀가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으면 음핵이 길게 자라고 가지가 뻗는다고 믿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여인의 자녀들은 비정상적이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여인은 아직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그 여인이 낳은 아이는 “어린아이의 아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정황을 염두에 둔다면 통과의례를 행하는 심리적인 중요성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의례를 행하지 않는 여인은 참으로 “그 어느 누구”일 수도 없고 “불완전한 인간”이며, 아직도 “어린아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함께 사는 협동적인 실존의 분위기 속에서는, 따라서 어떤 사람이 그러한 의례에 참여하는 것을 회피한다던가 피해 달아난다던가 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러한 여인은 조만간 그 가족이나 이웃의 조롱거리가 되고, 그녀에게 어떠한 불행한 일이 닥치게 되면 제의적 성숙의 “고리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격리기간이 끝나고 통과의례를 모두 마치면 곧 소녀들은 결혼을 한다. 그들이 격리되어 있는 동안 집안에서는 남자 친구들의 집안과 결혼에 대하여 의논을 하고 혼인약속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의례에 참여하지 않은 여자는 결혼을 하지 않고 일생을 보내던가, 결혼을 하더라도 비정상적인 아이를 잉태할 거라고 하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현대의 생활이 이러한 태도나 실천에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사실이다.
난디족의 할례 또한 성숙을 위한 의례라는 점, 그래서 어린아이임을 단절하고 어른에로 결합되는 것을 극화한 의례라는 접은 동일하다. 성기는 생명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성기를 상처 내는 것은 생명의 분출을 열어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열어놓아야 비로소 막히지 않고 생명이 흘러나올 수 있는 것이다. 격리는 죽음의 상징이다. 그것은 마치 씨앗을 땅속에다 묻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의례를 끝내는 것은 새롭고 책임 있는 생명으로의 부활, 곧 새싹의 돋아남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자아이나 여자아이들의 통과의례를 통하여 그들이 속한 전체 종족의 협동적인 삶 자체가 다시 소생하게 된다. 그 공동체의 삶의 리듬에다 새로운 진동의 계기를 마련해주고, 그 공동체의 생명력이 되살아나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의례를 거절하는 사람이나 그 의례의 조화를 망치는 사람(처녀가 아니라든지 겁쟁이라든지 해서)은 전체 난디족의 사회에 심각한 반역을 범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여인은 공동체 전체를 멸망시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렇게 보면 부끄러움을 당한 딸이나 누이의 부모들이나 가족이 자살을 하려 한다든지, 그 소녀를 전체의 공동체적 실존을 위하여 죽여야 한다든지 하는 생각을 하게되는 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 이 의례는 깊은 차원에서부터 솟아난 심원하게 거룩한 제의이다. 이 제의에 종족 전체의 사활의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의례는 죽음과 와해의 극복 및 정복을 종교적으로 극화한 것이다.
성기를 단절하거나 뚫는 것, 머리를 깎는 것등은 모두 하나의 존재양태를 단절하고 다른 존재양태로 이입하는 것을 상징한다. 얼굴을 흰 진흙으로 얼룩지게 하는 것은 새로운 출생,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의례를 마치면 남자들은 하나의 전사로서의 생애를 시작하게 되고, 여자들은 결혼을 하게 되며, 때로는 그 의례가 끝나는 즉시 실제로 결혼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세대의 리듬은 극화되고 연출된다. 함께 통과의례를 겪은 사람들은 여생을 신비스러운, 그리고 제의 적인 유대관계를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사실상 그들은 한 몸이고, 한 집단이고, 한 공동체이며, 한 백성인 것이다. 그들은 온갖 일을 서로 돕고 살아간다. 한 사람의 아내는 같은 연령집단의 다른 남자들의 아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집을 방문하면 그 집의 남자는 그 찾아온 사람에게 자기 아내와 동침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그 남편이 집에 있든 없든 그것은 상관이 없다. 이것은 집단의 연대성을 긍정하는 깊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각 개인은 “나는 우리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즉 우리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있는 것이다”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연대성은 안정감, 일체감, 협동적인 실존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 등을 창조하고 제공한다.
은데벨레족은 형식화된 통과의례 대신에 성숙기의 변화를 표현하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의식을 행하고 있다. 남자아이의 경우를 보면 최초로 몽정을 한 다음 날,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일찍 일어나 벌거벗고 강에 가서 몸을 씻는다. 그리고 나서 집에 돌아와 가축의 우리에 이르는 출입구 가까이의 집 밖 모퉁이에 서 있는다. 그러면 그것을 본 다른 소년들이 몰려나와 장대로 그 아이를 때려준다. 그 소년은 숲으로 달아난다. 그리고 거기에서 2, 3일간 머문다. 그 동안 다른 소년들은 그를 조심스럽게 지켜본다. 그 며칠 동안 그 소년은 낮 동안에는 결코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 다만 밤에만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 기간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서 전통적인 주의가 마련해준 약이 섞인 음식을 먹는데, 이 일은 하나의 의식으로 행해진다. 즉 주의가 장대 끝에다 옥수수로 된 음식을 놓고 이것을 그 소년의 입에다 틀어넣으면 그 아이는 그 막대를 입에 꼭 물고 그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잘 하면 주의는 그 막대를 가지고 그 아이를 세 번 혹은 네 번 내려친다. 이러한 매질은 그 아이를 단단하게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이 일이 끝나면 그 아이의 아버지와 친척들이 몰려와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그 아이에게 선물로 준다. 여자아이들의 경우에는 첫 번째 월경을 한 다음 오랫동안 찬물에서 몸을 씻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그녀의 부모들은 커다란 잔치를 베푸는데, 이 잔치가 끝나면 소녀들은 긴치마를 입기 시작한다. 긴치마를 입는 것은 이제 그 여자아이들이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며칠 동안을 수풀 속에서 보내는 것은 역시 “죽음과 부활”의 관념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유년기를 단절하는 행위는 몸을 씻는 일로 극화된다. 이 제의 적인 목욕은 동시에 비생산적인 삶의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보다 깊은 종교적 정화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또한 이 의식은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 즉 결혼, 재산의 소유, 책임지는 행위(아이들은 “단단하게”하기 위하여 매를 때리는 일을 참고할 것)등의 준비를 극화한 것이다. “단단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인간이 이제는 모든 특권과 의무를 지고 보다 넓은 사회에 완전히 협동적으로 참여하게 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며, 그러한 자질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프리카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성년이 되는 통과의례는 현대생활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년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가 개인의 삶이 지닌 전통적인 순환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는 곳에서는 여전히 그러한 관습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씨족과 가계는 아프리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집단들이다. 씨족과 가계는 개인보다는 결국 이러한 조직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에 대해 법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법인집단(corporate groups)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개인들이 토지를 이용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씨족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에게 땅을 처분할 권리는 제한된다.
씨족의 전설과 신화는 역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그리고 씨족 조상들은 현재 살아있는 구성원들의 일상의 행동과 밀접하게 관련된 영혼의 신, 살아있는 사자(living dead)로서 존재할 것이다. 씨족 조상들은 현존하는 사람들에게 사후에도 중요한 존재로서 실존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씨족 구성원들은 위기나 필요한 의식에서 서로 돕는다. 결국 씨족은 궁극적인 관련 집단으로 개인의 정체성, 명성, 그리고 자부심이다. 한 아프리카인은 “만약 내가 매우 오랜 길을 걸어서 지쳐 더 걸을 수 없다면 나는 지쳐 쓰러질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씨족의 이름을 말한다면 나는 일어나 걸을 것이다”라고 개인에 대한 씨족의 영향력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는 그의 씨족이 그의 피곤함보다 더 중요하고 그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며 그의 씨족에 대한 기억이 그를 지탱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즉 씨족은 개인에게 물질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지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깊은 친족감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아프리카 생활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친족관계는 혈연관계와 결혼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친족관계는 한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통어하며 결혼관습과 규례도 이 친족관계가 다스린다. 또한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태도로 대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도 이 친족관계가 결정한다. 사실 이 친족감은 ‘부족’의 전체 삶을 한데 묶어 놓는 것일 뿐만 아니라 ‘토템(totem)'의 체계를 통하여 동물, 식물, 생명 없는 물건들에게까지 확대되기도 한다. 씨족은 대체로 토템을 통하여 구별한다. 즉 각 씨족은 동물이나 식물, 돌이나 광물 등의 어떤 것을 그 씨족의 토템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씨족의 구성원들은 자기들의 토템은 절대로 살해하거나 먹지 않는다. 토템은 일체성, 친족, 소속감, 연대감, 공동의 친화감을 가시적으로 나타낸 상징이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와 관련된 거의 모든 개념들은 친족관계의 체계를 통해서 이해될 수도 있고 해석될 수도 있다. 친족관계는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의 행동과 사유 및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족체계는 죽은 사람과 장차 태어날 사람들을 포함하여 수직적으로 확대된다. 많은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그들 가계의 족보(the genealogies of descent)를 공부하는 것이 전통적인 교육의 일부가 되고 있다. 족보는 심원한 역사적인 소속감, 깊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이 족보를 계승 확대해야 하겠다는 거룩한 의무감을 가지도록 한다. 족보를 통하여 현재에 살고 있는 개인들은 과거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과 굳은 연계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족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그 존재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근거인 과거를 향하도록 하는 거룩한 수단이다. 족보를 통하여 과거에 살고 있는 사람과 현재에 있는 사람은 인간의 삶이 지니고 있는 무시간적인 리듬 속에서 ‘동시대적(同時代的)’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족보를 통하여 신화적인 ‘최초’의 인간, 혹은 국가적인 영웅에까지 소급해 올라감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긍지와 만족감을 지니게 하기도 한다.
연장자들이 죽으면 그들은 명예스러운 조상들로서 후손들에게 기억된다. 또 후손들은 그들의 살아있는 집합적인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의 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조상숭배를 ‘ancestor worship'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worship'이라는 말은 아프리카인들과 조상들의 관계를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조상숭배는 존경, 경외, 숭배 등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조상숭배는 현실의 일시적인 순간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서 사회조직은 마을의 사회적 영역뿐 아니라 전임자들의 사회적 시간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조상들은 초연장자(super-elders)다. 그들은 가장 최고의 위치에 있다. 왜냐하면 축적된 모든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며 결과적으로 어떤 종류의 불사, 불멸을 얻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할례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성인이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음핵절제술이라고도 불리는 여성의 할례(clitoridectomy)는 피를 뽑는 것에서부터 음부봉쇄(음핵, 소음순과 대음순의 2/3를 제거하고 대음순의 나머지 부분은 뒤의 작은 구멍과 연결되도록 함) 또는 여성생식기절단(FGM : Female Genitial Mutilation)을 말한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28개국, 아랍-이슬람 국가 중에는 이집트와 수단, 소말리아, 나이지리아 등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이들은 할례를 문화적 전통이며 종교적․윤리적 전통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으며 책임 있는 성인이 되는 필수적인 단계로 간주된다. 1994년 이집트의 빈민구역 이발소에서 10세 여야의 할례 시술 모습이 CNN을 통해 전세계인에게 방송되면서 여성 탄압과 인권 탄압의 상징으로 부각되었다.
현재 아랍과 아프리카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1억 2천만~1억 3천만 명의 여성이 할례를 받았으며, 매년 200만 명의 소녀들이 할례시술을 받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1997년부터 여성할례를 법으로 금지하고 할례 근절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으나, 여전히 개발이 낙후된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상당수 여성들이 할례를 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성 할례 금지를 위한 아랍-아프리카 전문가회의"가 지난 2003년 6월 21일부터 3일간 아랍-아프리카 28개국 전문가들과 비정부기구(NGO)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개최됐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을 역임한 엠마 보니뇨 현 유럽의회 의원은 연설을 통해 ꡒ이번 회의는 여성 할례를 근절하기 위한 투쟁의 새로운 시작" 이라면서 여성의 할례 관행을 퇴치하기 위한 "전세계 모든 여성의 단결"을 촉구했다.
부족에 따라 음핵을 부분적으로 잘라 내거나 외음부 전체를 절단하는 등 조금씩 상이하며 할례를 행하는 시기도 생후 7일 만에 행하는 부족이 있는가 하면 사춘기 시기에 행하는 부족도 있다. 할례를 행하는 도구도 소독되지 않은 면도날이나 칼이 주로 쓰이고 봉합시에는 바늘이나 가시가 이용된다. 사춘기에 이르러 할례를 행하는 부족 사회는 할례를 받은 소녀를 소녀에서 여인으로, 미성숙한 개체에서 성숙한 인격체로, 불완전한 자에서 완전한 자로 변화시키는 것이기에 부족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중했다.
난디(Nandi)족의 할례의식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소녀들은 할례시술을 받기 위해 수술 받을 장소에 들어가 쐐기풀로 음핵을 찌른다. 이렇게 하면 음핵은 무감각해지고 부풀게 된다. 그들의 젖가슴도 쐐기풀을 대어 찌른다. 쐐기풀은 대단히 아픈 것이어서 소녀들은 울부짖기도 한다. 그 소리를 누르기 위해 부인들은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다음 날 이른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의식을 행한 집 둘레에 모여 약 50미터나 100미터쯤 떨어져 둥글게 둘러선다. 의식에 참여했던 부인들은 그 안에서 그들 나름대로 원형으로 서고, 가운데에다 수술을 할 때 사용할 걸상을 놓는다. 그리고 수술 집행자는 구부러진 칼을 들고 선다. 그런 다음에 부인들은 소녀들의 처녀성 여부를 조사한다. 처녀인 소녀는 수술을 받기 위해 걸상 위에 앉고 처녀가 아닌 사람은 맨땅 위에 앉는다. 수련자는 아랫도리를 벗고 두 다리를 넓게 벌린 채 하늘을 쳐다본다. 수술자는 왼손으로 음핵을 잡고 오른손으로 재빨리 그것을 잘라낸다. 소녀들은 이 단계에서는 별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이미 쐐기풀 때문에 성기가 무감각해졌기 때문이다. 혈관이 잘 묶여지지 않은 경우(거의 그런 일은 없지만)를 제외하고는 별로 많은 피를 흘리지 않는다. 그것이 끝나면 다시 종을 넓적다리에 단다. 구경꾼들은 재빨리 달려가 누가 겁쟁이였고 누가 처녀였으며, 누가 처녀가 아니었는가 하는 것을 알린다.
이 순간이 할례시술에 참여한 소녀를 가진 가정이나 친척들에게는 가장 긴장된 순간이다. 만약 어떤 소녀가 겁쟁이라든가 처녀가 아니라고 알려지면 그 부모와 형제들은 스스로 죽어버리든가 그 소녀를 살해할 만큼 심각한 치욕으로 느낀다. 다른 사람들이 말려야 겨우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할례 행위로 야기되는 부작용을 열거해 보면 골반염, 소독되지 않은 기구 사용으로 야기되는 파상풍, 각종 감염, 분만 합병증, 궤양, 불임증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심리적 충격, 원만한 성생활 장애등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내려오는 이러한 관습이 여성에게 가해지는 고통의 무게는 형언하기 힘들다. 개인에게 가해지는 고통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부작용이 있다. 할례를 받는다는 것이 성인의 세계로 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할례 의식을 받고 나서는 학교를 그만두고 결혼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발전의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여성 할례의 주요 목적은 여성의 성적 욕구를 억누르고 결혼하기 전까지 순결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함인결함과 종교적 청정함과의 상관관계를 억지 결부시켜 생각하려는 발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케냐에서는 1982년 다니엘 아람 모이 대통령이 여성 할례를 금지시켰으나 여성 할례 금지령을 위반하여 법적 제재를 받은 예가 거의 없다. 케냐에서는 모든 부족 사회에서 할례가 실시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마사이, 삼부루, 키시, 메루족 등의 부족 공동체 사회 속에서 뿌리깊게 남아 있다. 케냐 여성의 약 50%, 즉 절반 정도의 여성들이 아직도 할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할례가 이들의 의식 속에 얼마나 깊이 각인 되어 있는지 절감할 수 있다. 아프리카 전체적으로는 주로 중북부 아프리카에서 광범위하게 실시되고 있고 약 26여개 나라에서 1억에 이르는 여성들이 소녀에서 여인으로 것을 고려하면 남성에 의해서 강요된 순결의 신화임을 알 수 있다. 여자의 성기를 성적인 즐거움과 쾌락이 아닌 생산의 도구로서만 여기는 남성중심의 가치관임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적인 측면과 결부 지어 설명하려는 시도도 결국은 강요된 순결로, 육체적 정 다시 태어나는 의식을 아직도 치르고 있다.
최근에는 할례 시술 방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거의 드물어 현재 할례를 행하고 있는 노년층이 물러나면 할례를 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족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에 할례 전통 역시 수그러들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부족의 고유한 문화 및 가치가 희미해져 가고 있는 도시 지역보다는 인습과 전통을 고수하는 농촌 지역에서 할례가 많이 행해지고 있으며, 서구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여성 할례 자체를 미개하고 버려야 할 관습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여성 할례라는 오랜 전통이 설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프리카인들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good man)"은 어떤 사람들일까? 물론 좋은 사람은 사회와 자연 사이의 섬세한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사람이며 다산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 도덕적 명령은 어른들은 존경하는 것이다. 특히 그들의 직계집단에서 이런 존경은 어릴 때부터 가르쳐졌다.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배웠다. 그들은 어른들에게 말 할 때 항상 정형화된 방법으로 말해야 했고 어른들이 얘기할 때 끼여 들면 안 되었고 그들에게 소리치면 안 되었다. 잘못 행동하는 자식이 있는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린 동생은 형이나 누나를 존경해야만 했고 직계 집단의 구성원들을 존경해야 했다. 맥주 마시는 날이나 축제 때에는 다른 연배 집단과의 혼합은 없었다. 각각의 집단은 따로 앉고,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과 한 접시에서 먹지 않았다. 자리배열이 이런 것을 강화시켰다. 젊은이는 그의 머리가 윗사람보다 높게 보이는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존경에 대한 이런 강조는 가족에서부터 씨족에 이르는 모든 친족집단으로 요약되었고, 충성이나 혈족에 대한 상호원조와 관련이 있었다. 친족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의 중요성은 도덕적 절대 원리로써 진실을 말하는 것이 결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진실을 말함으로써 집단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면 거짓말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인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좋은’남자는 윗사람을 존경할 뿐 아니라 그의 친족집단에 충성하는 남자였다. 그는 또한 좋은 이웃이다. 이것은 그가 보호를 하고 아니면 보호받는 그와 관계없는 구성원과의 협력을 의미한다. 사실 이것은 어쩌면 가족의 재산을 노려 음모를 꾸밀 수 있는 친족보다는 사욕 없는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이웃을 말한다. 이웃들은 들판에서 농사로 도와주고 아플 때 수확한 것을 집으로 가져다준다. 좋은 사람은 그의 시간에 관대하고 다른 사람의 곤경에 참여하고 그의 세상의 재산에 관대한 사람이다. 관대함은 최고의 미덕이었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추장같이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여기에 다시 순종을 책임지는 제재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은 도덕적으로 해야 하는 올바른 것이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올바르게 행동했다는 걸 알리는데서 오는 자기만족감의 달아오름 때문에 다른 이를 도와주었다. 그들은 만약 도와주지 않았다면 후에 자신의 도움을 거절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어떤 특별한 지역에 속한 이웃에 대한 느낌은 강한 지역 충성심으로 그러나 가깝게 함께 사는 것은 또한 문제점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삶이나 농사에서 다른 수확성공으로 일어나는 질투의 가능성이 항상 있었다. 이웃은 우리가 뒤에 볼 이러한 긴장을 반영한 마법의 고발지역에 있었다. 좋은 사람이란 마법의 의심이 가장 적은 때 묻지 않은 그런 좋은 이웃이었다.
모든 사회는 그들의 문화적 유산과 인간적 경험을 다음세대에게 전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아프리카 문화에서, 물려받은 인간적 경험의 집합체인 통찰력과 관습은 말을 통해 전달된다. 구전으로 전달하는 과정과 그 결과물인 구전 텍스트들은 구전전통이라 부른다. 구전전통의 가장 특징적인 사항은 입을 통해 적어도 한 세대 이상 전해진다는 것이다. 구전전통 텍스트는 지난 사건과 관습을 배타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몇몇 동시대의 아프리카 사회에서, 그 주민들의 주요한 부분과 구전전통과의 관련성이나 타당성은 동시대의 유럽과 미국 사회에서 쓰여진 역사적 증거보다 훨씬 더 높다.
역사가, 인류학자, 그리고 사회학자들은 그들의 작업을 편찬하기 위해 구전을 사용한다. 구전은 보존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기록이다.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에서 구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무쿨라(P. M. Mukula)는 구전이 없이는 아프리카의 사회에 대한 역사 기록작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있어 구전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 한 국가의 역사와 미래세대의 참고자료로서 자료를 수집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구전의 전승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망하기 전 구전을 채집하는 일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기록보존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젊은 세대에게 구전을 전해주는 읽고 쓰는 방법은 몰랐지만 속담, 그림, 이야기, 노래 등과 같은 세심한 장치를 통해 부족의 역사를 보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예술 장르들에 삶의 다양한 면면을 효과적으로 투사할 수 있었다. 역사적인 정보의 전달과 보존은 구전을 통해 이루어졌다. 구전을 정보를 보존하고 다음세대에 전달하는 기록관리자의 임무를 담당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기록보관은 아프리카사회에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구전은 특정한 집단에 속하는 정보의 집합이다. 세대를 거쳐 구술로 전해진다. 무엇이 어떻게 전수되었는지는 집단정신이 무엇을 보존하고자 하는지에 달려있다. 전수의 수단도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구전은 집단의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과거로부터 전해져 오며 미래의 세대에 전수할 의무를 지닌다. 전통의 창시자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전은 항상 익명성을 가지고 있으며 첫 번째 증인 혹은 창시자에 대해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구전의 중요한 역할은 과거의 집단적 경험을 통해 정체성을 지켜나가며 소속감을 향상시킨다. 재앙이 닥쳤을 때도 정체성은 집단의 재산이었다. 구전을 모두에게 유효한 공적 재산으로 여겼다
아프리카인들은 구전 문화와 전통에 그 뿌리를 둔 세계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이야기와 이야기꾼을 경외한다. 고대의 글쓰기 전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존재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주로 구전인들이며 그들의 예술형태는 문헌적이라기보다는 구전형태이다. "쓰여진 문헌(written literature)"과는 반대로 케냐의 소설가이며 비평가인 응구기 와 시옹고(Ngugi wa Thiongo)가 사용한 “구연(orature)"이라는 용어는 말로 만들어져 전해진 것으로 춤과 음악의 필수적인 부분으로서 말로서 공동체내에서 종종 만들어지고 행해진다. 아프리카의 구전예술은 풍부하고 다양하며 아프리카 문화의 초기부터 발전을 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꽃을 피우며 살아있는 전통으로서 전해내려오고 있다.
아프리카 ‘구전문화(oral culture)’의 개념은 구연문학(oral literature), 구전전통(oral tradition)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구연문학이란 입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다양한 형태의 문학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넓은 개념의 구전문화는 그 초점이 생산물과 멀리 떨어져 변화한다. 다시 말해, 원문은 구전원문의 이야기가 행해지는 역사적 상황과 사회적 배경을 포함한다. 게다가 구전문화는 구연 의사소통 관습의 지속성을 위해 말하는 단어의 사용과 주의를 끄는 것과 관련된 모든 관습과 습관을 가리킨다. 공연(performance)은 구전 텍스트의 실질적인 행위인 반면에 구전문화의 다양한 생산물은 구연문학으로 불리어질 수 있다.
특히 非문자사회라는 아프리카의 특성상 구전전통ㆍ구비전승(oral tradition)은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구전은 풍부한 기억력과 상상력을 기초로 ‘입’에서 ‘입’을 통해 사실을 전승하는 방법론으로 문자체계가 없었던 사하라이남 반투 사회의 대표적인 역사전승 방식이었다. 함파테(HampâtâBé)가 ‘아프리카에서 나이 많은 이가 죽으면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 진다.’고 말한 내용은 역사적 자료로서 구전전통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잘 말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전전통은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온 그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을 지니고 있는 보물단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부족의 역사와 전통을 기억하고 암송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유산을 관리하는 사람들(the custodians of heritage)’로 불리어졌다. 이러한 사람들을 서부아프리카에서는 그리오(griots) 남부 아프리카의 코사족에서는 임봉기(imbongi)라고 불리어졌고 서부 아프리카보다는 자유로운 형태로 동남부 아프리카에서는 주로 연장자나 주술사등 사회의 전문가집단에 의해 전승되었다.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들이 이와 같은 구전역사가들의 발화를 통해 나타난 신화, 전설, 찬양시, 속담, 이야기, 그리고 음악속에서 그들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의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아프리카인들에게 시간은 이차원적인 현상이다. 즉 긴 ‘과거’와 ‘현재’만이 있을 뿐 실제적으로 미래가 없다. ‘실제적인 시간’이란 현재의 시간이며 과거의 시간이다. 일단 일어난 사건은 이제는 미래를 향하지 않고 현재와 과거 속으로 전개해 나간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뒤로 움직이는 것이다. 반면에 ‘잠재적인 시간’이란 미래에 틀림없이 일어날 사건, 또는 자연현상의 불가피한 리듬 안에 있는 것을 가리키고 일어나지 않은 것, 혹은 곧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건은 비시간(No-time)의 범주 안에 속한다. 미래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미래 속에 있는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이며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을 구성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도 그들의 마음을 미래의 사물에다 두고 있지 않고 이미 일어난 것에 두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시간의 일부를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삶 속에서 경험해야 하고 미래에 있는 것은 전혀 경험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음비티(J.S. Mbiti)의 주장처럼 아프리카인들은 대시간(Macro-Time)인 자마니(zamani ; 과거)와 소시간(Micro-Time)인 사사(sasa ; 현재)로 구분되고 미래라는 시간개념은 실제적인 시간의 너머로 생각된다. 사사라는 시간은 개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사사기간 동안에 일어난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스스로의 기억이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그의 사사기간이 젊은 사람보다 길다. 공동체의 입장에서 보아도 개인의 사사보다 좀더 중요하고 크다는 것일 뿐이지 자체적으로 사사기간이 있다. 사사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실존을 의식하는 시간의 영역이고 그 속에서 그들 스스로의 짧은 미래 속에, 그리고 주로 자마니라는 과거 속에다 투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사는 그것 자체로의 짧은 미래와 역동적인 현재와 경험된 과거를 함께 지닌 완전한 혹은 충분한 시간인 것이다. 자마니는 사사와 필연적인 관계이며 그것 자체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지고 있다. 즉 사사는 ‘자마니에게 먹이를 준다.’든가 ‘자마니 안으로 사라져 들어간다.’고 표현할 수 있다. 자마니는 어떤 것도 그것을 넘어서서 더 갈 수 없는 그러한 기간이 된다. 자마니는 시간의 무덤이고 끝이며 모든 것이 휴지 점에 부닥치는 그러한 차원이다. 따라서 자마니는 모든 현상과 사건들을 모아놓는 마지막 창고이고 모든 사물이 이전도 이후도 없는 현실 속으로 흡수되는 시간의 바다이다.
자마니는 사사가 근거하고 있는 기초이며 또한 사사는 자마니에 의해 비로소 설명될 수 있고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마니는 소멸이 아니라 많은 일과 사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구전전통에서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듯이 신화와 전설에서 보여주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의 역사관도 자마니를 지향하고 있지 지극히 짧은 시간안의 미래나 존재하지 않는 미래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인들의 신화와 전설은 그 어떤 것도 세상에 종말을 가져올 수 없으며 인간의 역사가 사사로부터 자마니로 움직이는 리듬 속에서 영원히 계속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어떤 이는 역시 사건들을, 특히 사람들의 활동들에 대해, 그것들이 마쳐졌는지, 아직 진행 중인지, 혹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지 고려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마쳐지거나, 완벽히 마친 사건들이나 활동들은 다 마치지 못한 일들보다 더욱 현실적이고, 아직 시작되어지지 못한 것들 보다는 훨씬 더욱 그렇다. 단순한 기술체계를 가지고 있고, 일시적인 흥미 거리가 사회 활동으로 집중되는(시계, 달력, 연대기, 그리고 자연 현상들이 아닌), 토착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과거가 미래보다 훨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사회체계를 제공하는 것이 과거이고, 사회관계도 과거부터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전문화에서는, 사람들은 그들의 기본적 방향을 위해서 아직 진행 중인 어떤 것 보다는 과거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들에게는, 역사는 미래의 골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것은 세계의 기원, 인류의 창조, 인간의 역사와 전통, 혹은 그들의 사회로의 전개등과 같은, 사람들의 존재의 뿌리를 짚어주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견해에 따르면, 미래는 비현실적이다. 그것은 아무런 사건도 포함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런 종교적 혹은, 규범적인 중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 계절, 연령, 혹은 세대의 반복을 미래에 반영하고, 지금부터 이렇게 많은 단위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야기 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만약 아프리카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이미 일어난 사건들이 끝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인들은 ‘진보에 대한 신념’ 곧 인간의 활동 및 업적의 발전은 낮은 데서부터 보다 높은 데로 나아간다고 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음비티의 주장은 에반스-프리차드(Evans-Pritchard)나 보해넌(Paul Bohannan)의 연구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에반스-프리차드는 뉘르(Neur)족의 시간개념을 연구한 후 뉘르족은 시간을 세대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고 설명하였다. 1년이 12개월의 단위로 나뉘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뉘르족은 그것들을 한 단위의 단편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도 어느 달에 한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추상적인 숫자 기호에서 일어난 사건들 간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그들은 완전한 시간의 단위보다 활동들이나 활동의 성과, 그리고 사회 구조와 구조적 차이들로서 훨씬 쉽게 받아들인다.
보해넌이 티브(Tiv)족으로부터 시간이란 제각기 다른 활동을 수용하는 일련의 폐쇄된 방으로 이러한 시간의 방들은 옮길 수도 섞일 수도 없다고 밝힌 내용도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티브족에게 시간은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현상들에 의해 다른 종류의 기간들로 분류되어진다. 하지만 그 사건들은 종종 다른 논리적인 시리즈에 속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시간의 분류를 서로 관련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티브족은 달을 시장이나 농업 활동, 혹은 계절과 연관시키지 않는다. 만약 누가 얼마나 많은 달이 1년에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10에서 18까지 매우 다양하다. 만약 누가 한 달에 있는 시장의 개수를 물으면, 그 대답은 3에서 8까지 다양하다. 또한 한 달에 있는 일의 수를 물으면, 10에서 15까지 다양하다.
아프리카의 시간 계산은 반복되는 자연현상을 전제로 한다.- 계절, 달의 차고 기움, 그리고 해의 움직임- 그리고 이러한 현상과 관련된 사회 활동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또한 개인과 사회의 전반적인 삶 속에서의 사건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준으로 삼는다. 이러한 사실들은 아프리카인들이 시간을 양적인 것보다는 질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경험들에 근거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즉 아프리카인 들은 다른 사건들에 비해 구체적인 사건들을 중요시한다. 예를 들어, 한 아프리카인이 ‘그 마을은 내 막내아들이 태어났을 때도 옮기지 않았어요.’ 혹은, ‘정부는 내가 정화의식을 한 후에, 그리고 결혼을 하기 전에 출범했다.’라고 표현한다.
‘하루’는 아프리카의 공동체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맞추어 시간이 진행된다. 예를 들어 우간다의 앙코레(Ankore)족은 가축을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가축을 돌보는 일에 맞추어 시간이 나누어진다. ‘달’은 ‘뜨거운 달’, ‘첫 비가 오는 달’, ‘잡초를 뽑는 달’, ‘콩을 거두어들이는 달’, ‘사냥을 하는 달’등으로 나누어 계산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이 시간적으로 정확하게 구분되기 보다는 얼마나 지속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해’는 계절에 따른 활동들에 맞추어서 이루어진다. 모두 ‘몇일이 한해인가’라고 세기 보다는 ‘건기와 우기가 몇 번이나 지나갔는가’로 계산된다. 이 또한 정확한 날짜로 계산되면 365일을 벗어나 340일이 될 수도 있으며 360일이 될 수도 있지만 계절이나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차이도 느낄 수 없다.
낮과 밤의 끊임없는 리듬처럼, 그리고 달의 차고 기울음처럼 한해가 왔다가는 가곤 하는 그런 세월을 사람들은 기대하면서 살아간다. 즉 그들은 우기가 오면 다음에는 파종의 계절이 오고, 그것이 지나면 수확의 계절이 오며, 그 다음에는 건기가 오고, 그것이 지나면 다음에 다시 우기가, 그리고 그 우기의 다음에는 또 다시 파종의 계절에 오는 이 같은 영원히 지속되는 일들을 기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해를 지내면서 과거라고 하는 시간의 차원이 차츰 더해져 간다. 그들에게 있어 ‘무한’이라든가 ‘영원’이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다만 과거의 영역에 속해있는 어떤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시간은 양을 잴 수 없는 다른 사건들의 반복들과 세대나 연령층과 같은 사회 구조들로서 표현되기 때문에, 시간은 균일한 것, 지속적인 것, 혹은 동일한 것으로 이해되어 지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관점에서는, 지금의 하루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똑같은 하루라고 생각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 시간은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한다. 따라서 양력과 그것을 다시 일정한 달, 일, 시, 분, 초로 나눈 것에 근거한 현대 서양 문명의 연대기와는 다르게 자세한 과정들의 세부사항부터, 현재 시간까지의 일시적인 과정의 측정을 동일하게, 지속적으로, 그리고 균일하게 추상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아프리카인들은 시간을 수학적인 계산으로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사건들과의 관련속에서 구체적이고 특정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헤아린다. 즉 시간은 사건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날, 달, 해, 일생, 혹은 사람의 삶은 제각기 그것들이 지닌 특별한 사건에 의해서 모두 나뉘어지고 헤아려진다. 왜나하면 그러한 시간들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일 어떤 일을 하자’라는 약속은 정확히 몇 시에 하자는 의미보다는 ‘무엇을 한다.’라는 의미가 강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무엇을 한다.’라는 사실이다.
아프리카인들은 말을 대상화하지 않고 지시체의 실재에 속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들은 언어를 개인의 능력과 사회적 존재의 통합적 특성이 발화의 힘 속에 체현된 것으로 보았다. 이런 점에서 말은 단지 학습된 형식의 효과적인 정교화가 아니라 개인이 가진 발성되는 힘이었다. 그리하여 발화는 개인의 지위에 따라 상대적 무게를 가진다. 말의 힘은 세상에 적극적으로 행위하는 인간의 능력으로 간주되어 저주, 주문, 기도와 같은 ‘위대한 말들’은 무기로 사용되었다. 이들의 문화에서 말하고 명명하는 것은 경험을 창조하는 것, 곧 실재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체계는 구체에서 추상의, 사물에서 말의 명쾌한 분리에 실증적 지식이 있다고 보았던 19세기 유럽인의 경험주의적 인식론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언어에도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나이가 많다든지, 사회적인 위치나 공직에서의 직위가 높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속에는 신비스러운 힘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는 말속에는 “힘”이 들어 있다. 그래서 특별히 위기에 처한 경우에 발언되는 부모의 말은 행운을 “낳기도”하고, 저주, 성공, 평안, 슬픔, 혹은 축복을 “낳기도”한다. 또 주의의 말은 그가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주는 그 약을 통해 작용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질병을 치유하거나 불운을 예방해주는 것은 약초보다도 사실은 그 주의의 말의 효험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식적인 “저주”와 “축복”은 지극히 실제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다. 앞장에서 서술한 전문가들도 실은 개인적으로나 그들의 직책이나 직능으로 인해서 그와 같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재판을 할 때 저주를 징벌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입장의 기본적인 원리는 다른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이 유죄라고 하는 것이 판명되면 그를 저주함으로써 그 저주의 말에 의하여 악이 그에게 떨어질 거라고 하는 신념이다. 주로 가족내에서 이루어지며 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만이 효과적으로 낮은 위계의 사람들을 저주할 수 있지, 그 역은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된다.
가장 두려워하는 저주는 부모나 아저씨, 아주머니 혹은 가까운 친척들이 집안의 “젊은이”들에게 하는 것이다. 또 가장 고약한 저주는 임종시에 하는 저주이다. 일단 그 저주자가 죽으면 이를 취소할 방도가 실제적으로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죄를 범한 사람이 참회를 하고 저주를 거두어주기를 원하면, 그 저주를 한 사람은 그 저주를 스스로 취소할 수도 있고, 또 그 저주가 심각한 것이었으면 제의를 통하여 취소할 수도 있다.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죄를 범한 사람에게 부어진 저주가 이루어졌다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만약 그 저주를 받은 사람이 죄가 없으면 저주는 기능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사회는 공식적인 저주를 매우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은 마치 마법에 대한 두려움과 같이 특별히 가족권 안에 있는 좋지 않은 관계를 저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아프리카의 종교적 사고는 신화, 구전 전통 그리고 연장자들 그리고 세대간 논의를 통해서 표현된다. 또한 영적인 힘을 끌거나 그것의 자비를 얻기 위해서 제물을 바치는 행위를 포함하는 의식을 통해서도 표현된다. 이러한 의식이 많은 전통속에서 최고 존재에게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데 최고 존재는 이미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이미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제물은 종종 야자 술, 기장맥주 그리고 물과 함께 바쳐지는 데 이는 말해진 것(단어)어의 힘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다.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은 제주(술)와 말해진 언어의 힘을 포함하는 생명력을 풀어주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의식의 힘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종종 참가자들은 희생양의 고기를 소비하고 술을 마신다. 따라서 이 모임은 그들의 기도자들을 향하여 일을 성취하도록 하기 위해 성직자와 영적 존재들이 결합된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의 시간개념은 어떨까?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한 가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아프리카인들의 시간개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케냐의 나이로비에 갔을 때 친분이 있는 나이로비 대학 교수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호텔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이 저녁 6시였는데 그는 7시 30분쯤에 나타났고 전혀 미안한 표정도, 왜 늦었는지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저녁은 우갈리과 차파티 그리고 수쿠마위키등 비교적 간단한 식사였는데 저녁 10시 30분에야 먹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화가 너무 났었지만 나중에는 아주 지쳐서 화내는 것도 포기하였다. 결국 숙소에는 11시 30분에야 돌아왔다.
아프리카에서 현지인들과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약속을 하면 제시간에 일이 시작되기보다는 언제나 늦게 시작되곤 한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대부분 아프리카인들은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특히 시골지역으로 가면 정말 답답할 정도로 무슨 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보다는 해시계와 달 시계가, 그리고 하루라는 시간이 더 중요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사람들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정말 시간개념이 없는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왜 늦었느냐?’, ‘약속시간이 이만큼이나 지났다’, ‘빨리 빨리 하자’등등 따지고 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천천히 해도 간다(Pole Pole ndio mwendo)'라는 말을 하면서 오히려 한 수 가르치거나 핀잔을 준다. ‘좀 늦기는 했지만 결국 할 일은 하지 않는냐.’는 식이다. ‘만약 일을 그 날에 다 못 끝냈으면 내일 또 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이다.
아프리카의 시간개념은 서구사회와 전통사회의 시계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 정확한 시간개념을 추구하기 보다는 상황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늦을 수는 있지만 반드시 가기는 간다.’라는 말은 시간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준다. 미리 충고하지만 ‘늦다’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결코 아니라는 아프리카인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 마음 상하지 않는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서구식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든가 공공기관 그리고 비즈니스분야에서는 비교적 시간을 잘 지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인관계 속에서는 시간과 약속에 대해 관대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고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으로 생각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훌륭한 비즈니스를 하고자 한다면 공식적관계도 중요하지만 비공식적 관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공동체의식과 개인이 맺는 ‘관계’를 중시하는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비공식적 관계가 일을 아주 쉽게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이 될 때가 많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아프리카인들의 시간개념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직선적인 시간적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서구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낯선 개념이다.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생산성과 떼어놓을 수 없다. 24시간의 시간은 생산적으로 활용되어야 하며 쪼개고 또 쪼개서 효율적으로 이용되어야 하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용된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인은 시간의 노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인의 시간은 언제나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들 수 있는 개념으로 시간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을 따지며 지내야만 하는데 그 이유는 시, 분, 그리고 초까지도 나누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는 일과 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사람과 어울려 지내면서 그날의 시간을 흘려보낸 것은 ‘아무것도 못한’ 범주에 속한다.
아프리카인들의 시간개념은 자연현상을 중시하고 사람을 모든 활동의 근본으로 생각하는 철학적 종교적 의식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연을 거스르고 거부하며 바꿀 수 있다는 생각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패턴에 따른다면 ‘우리의 시간개념과 아프리카인의 시간개념 중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이고 생산적이냐’라는 질문에는 주저 없이 전자라고 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느 것이 더 사람답게 사는 것이냐’라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시간을 인간의 삶 속에서 이용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우리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것일까? 시간은 고정불변의 것이라기보다는 문화집단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고 있다. 분명히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 문화적 구성요소로서 시간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며 아울러 인간정신의 산물로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너무 길어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음 = _ + 너무 길어서 ;
쩝... 그나마.. 재밌는 내용이네엽... copy해 갈려는 어떻게 해야는지..--;;
이거 글 올린 님 ^ ^ !!
이거는 블록지정해서 한글 97로 옮겨갈수가 업네요..!!
빌통 그립습니다~